전설적 바람둥이의 연애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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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나비처럼 사뿐히 다가와 뭇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홀연히 사라지는 바람둥이의 대명사 카사노바(1725∼1798). 그러나 그는 지식인이었다. 음식문화에서 시작해 역사와 종교에 이르기까지 세상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치밀한 관찰, 그리고 깊은 사유.

이 책은 바로 그 카사노바가 스페인을 여행하며 그 나라의 특징을 묘사하고 스페인 여자들에 관해 쓴 여행기다. 물론 "스페인 남자들은 천성적으로 질투심이 강하다"고 정의할 정도로 스페인 남자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실제로는 1백22명 여성과의 흥미로운 연애담을 담아 그의 이름을 호색한의 대명사로 남게 한 회고담 『내 인생 이야기』 중 스페인 여행편만을 발췌해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등장 인물들의 방대함, 성격의 다양함, 생활 묘사의 치밀함 등으로 18세기 유럽에 관한 사료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스페인 여행편에서도 여지없이 확인되는 사실은 카사노바의 여자 홀리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다름 아닌 자제력과 사랑에 관한 일관된 철학에서 비롯된다. 카사노바의 그런 특성이야말로 여성의 자발성을 고양시켜 카사노바의 품에 안기게 한다.

"나와의 만남을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해야 한다면 나는 당신을 품에 안지 않겠소." (2백44쪽 전후) 스페인 여성 이그나시아와의 사랑을 서술한 이같은 대목에서 카사노바의 특징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정사(情事)의 목표는 향락인데, (스페인에서는) 이 향락이 모든 것에 우선하기도 하지만 또한 무조건 금지되기도 한다. 그래서 비밀이 생기고 음모가 꾸며지는 것이며 영혼이 종교에 의해 강요되는 의무와 그 의무에 저항하는 열정의 힘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고뇌하는 것이다."

나아가 책은 계몽주의가 뿌리를 내려가던 당대의 시대정신을 확인하게 한다. 예컨대 그는 귀족이란 신분의 대물림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와 명예를 우선시하는 행동의 소유자임을 설파한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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