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허점 많은 미국의 한·미 FTA 수정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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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기존의 한·미 FTA 협정문은 오랜 준비와 1년 이상의 협상을 통해 이루어진 양국 간 타협의 산물이다. 2007년 6월 말 양국 정부는 이 문서에 공식 서명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한·미 FTA 발효에 필요한 의회 비준 절차를 지금껏 미루고 있다. 미국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혀 한·미 FTA 발효가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가지 이유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첫째, 한국이 유럽연합(EU)과 FTA를 타결하고 중국과의 FTA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미국은 한국 시장에서 미국 상품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의회 지도자들과 하원의원 101명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 FTA 비준안 제출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한·미 FTA 비준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다.

둘째, 오바마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밝힌 것처럼 수출을 통한 미국 경제의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 5년 내에 미국의 수출을 두 배로 늘리고 2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그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적극적으로 수출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데 미국만 가만히 있으면 그의 목표는 달성될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FTA를 새롭게 보기 시작한 주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미 두 정상은 지난 6월 토론토 G20 정상회의에서 한·미 FTA 비준을 위한 일정을 마련했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 이전까지 추가협의를 마치고 내년 초 미국 의회에 비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 꿈쩍도 않던 한·미 FTA 비준을 위한 노력이 공식적으로 재개된 것은 큰 성과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기존 한·미 FTA 협정문에 포함된 양국 간 이익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양국 의회와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데 있다.

우리는 당연히 미국 의회가 기존 협정문을 그대로 비준하기를 바란다. 사실 한·미 FTA 수정을 요구하는 미국의 주장은 허점투성이다. 자동차 교역의 불균형은 우리나라의 수입장벽 때문이 아니라 미국산 자동차의 가격과 품질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입차 시장은 매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이 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면 유럽이나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한·미 FTA의 조속한 발효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산 자동차는 경쟁국 자동차보다 값이 싸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불평하고 있는 자동차 관련 조세 및 환경기준도 한국이 이미 대부분 수용했다.

쇠고기 시장의 완전 개방 역시 미국은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이 문제가 원칙적으로 한·미 FTA와 관련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비중이 과거처럼 높지 않은 이유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한국민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몬태나 출신의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은 미국산 쇠고기가 2003년까지는 한국 수입 쇠고기 시장의 70%까지 차지했는데 지금은 30%에도 못 미친다고 불평하며 한·미 FTA 비준에 협조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참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태도다.

그렇지만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미국 내 정치적 현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정부는 미국 측의 요구가 안고 있는 허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설득하되 정치적 타협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상응하는 보상을 미국 측에 요구해야 한다. 한·미 FTA 추가협의의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보다 양국 간 이익의 균형이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깨지면 정부도 국내에서 정치적 어려움에 봉착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