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북한 밉다고 우리 국민까지 잡아서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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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런 말라리아가 경기도 북부 지역에 유행이다. 8월 4일 현재 파주를 비롯한 10개 시·군에서 신고된 환자 수는 286명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30% 증가한 수치다. 말라리아는 대개 9월까지 이어진다. 당연히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파주·연천·동두천은 위험지역으로 지정되었고, 고양·의정부 등 5개 시·군은 잠재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유독 경기 북부에 말라리아가 성행하는 것은 접경지역인 탓이다. 우리가 아무리 방역을 잘 해도 북한에서 모기가 날아오기 때문이다. 북한 지역에서도 방역이 이뤄지지 않는 한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예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의 말라리아 유행은 예견된 것이었다. 천안함 사건을 이유로 북한에 매년 지원하던 방역물품을 올해는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4월 질병관리본부는 휴전선 인근 지역에 올여름 말라리아 주의보를 발령했을 정도다. 결국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통일부는 6월 24일 민간 지원단체의 방역물품 반출을 승인했지만, 인도 절차 문제로 아직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설령 이제 지원이 이뤄진들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방역의 특성상 5월 이전에 전달됐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말라리아 예방에 ‘진정성’을 가졌다면 민간단체 승인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도 동시에 실시했어야 한다. 실제로 정부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도 WHO를 통해 말라리아 방역 지원을 해왔다. 이는 단지 북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말라리아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천안함 사건의 대응 조치로 5월 24일 남북교역의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겠다는 의도는 납득할 수 있지만, 남북교역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우리의 800여 개 중소기업에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북한을 응징하겠다고 우리 국민들이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을 방치한 것과 똑같은 논리이고 동일한 결과였던 셈이다.

늦장을 부린 것도, 그래서 효과가 미약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처하자 두 달이 지난 7월 26일에서야 특별 대출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비록 시중금리보다 싼 조건이긴 하지만, 어차피 갚아야 하는 돈이고 아무리 대출을 받는다고 한들 전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실은 5·24 대북조치에 우리 기업의 손실에 대한 대책도 포함됐어야 한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응당 그랬어야 한다. 사전에 대책을 세울 생각을 못 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안 했다면 직무유기였던 셈이다.

개성공단도 무턱대고 체류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인질 사태 우려가 이유라면 당연히 전원 철수를 시켰어야 할 일이다. 게다가 인원 축소에 따르는 경영 애로에 대한 대책도 없었다. 역시 사후조치도 늦장이었다. 7월이 돼서야 슬며시 80여 명의 증원을 허가했지만, 업체당 한 명꼴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고, 기업으로서는 오히려 약만 더 오르는 조치였다.

물론 멀쩡한 우리 장병 46명을 떼죽음으로 몰아넣은 북한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그러나 대응조치가 미칠 우리 내부의 파장에 대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했다. 사태가 엄중하다고, 말 눈 가리듯 오로지 북한에 입힐 타격만 생각한 것은 지나친 단견이고 무책임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 내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출구전략은 지금부터라도 시행되어야 한다. 북한이 밉다고 우리 국민, 우리 기업까지 잡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제 개각에서 5·24 대북조치의 3개 주무부처 장관은 유임됐다. 아직은 그 어떤 출구전략도 모색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우리 국민과 기업의 불안과 고통이 아무리 더 길어지고, 더 커지더라도 오직 북한만 괴롭힐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대북 인식의 천명이기도 하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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