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풀린 권력기관]내부정보 줄줄… 통제가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청와대·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권력·정보기관들이 이상하다. 군도 예외가 아니다. 내부 정보가 쉽사리 유출되는 것은 물론 조직원들이 조직의 입장과는 정반대의 견해를 밝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예 일손을 놓는 분위기다. 검찰의 병풍과 김대업 수사, 국정원의 도·감청 자료유출, 군 대북한 감청부대장의 국회 증언, 대북한 비밀지원 의혹과 관련한 전 산업은행 총재의 국회증언 등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달 11일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 식당 조리사인 田모(9급)씨가 金모(4급)행정관과 함께 펴낸 『청와대 사람들은 무얼 먹을까』라는 책 때문이다.

田씨는 이 책에서 대통령과 영부인의 식사습관이나 취향 등을 그리듯 묘사했다. 청와대 보안시설과 을지훈련 관련사항, 경비병력 인원, 대통령 주관행사의 준비과정 등 밖에 알려져선 안될 비밀사항도 적혀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에 비해 직원들의 기강이 크게 느슨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최근 공직기강 비서관이 청와대 직원들의 자세를 강의하는 등 기강을 다지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의 관료들과 청와대 비서실과의 관계도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정부 경제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전에는 크건 작건 모든 사항을 시시콜콜 청와대에 보고했으나 최근에는 국장급 이하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 청와대 보고를 회피하려는 경향도 있다"고 전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해 정치적 사안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국회의 추궁을 받게 됐고, 공동정권이 깨지고 대통령이 당적을 이탈함에 따라 민주당이나 자민련의 보호를 기대할 수도 없게 됐으며,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이 부쩍 늘어난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특히 정당에서 청와대로 온 사람들의 경우 정권이 끝난 뒤 갈 곳이 없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상황은 국정원도 비슷하다. 국정원 관계자는 "임기 말이면 집권 가능성이 큰 정치세력과 어떻게 해서든 줄을 대려는 움직임이 반드시 생겨나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라면서 "이로 인해 내부세력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암투가 벌어지고 직원들의 사기 저하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주로 현 정권에서 핵심자리로 옮겼거나 승승장구했던 간부급 직원을 중심으로 "누구누구는 다음 정권에서 당할 것"이라는 식의 소문이 도는 등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최근 한나라당이 국정원의 도청자료라면서 폭로공세를 펴자 내부감찰을 강화했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잡은 것은 한건도 없다고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인사나 연수 등에서 특정지역 간부와 직원들의 막판 챙기기가 극심해지고 있다"면서 "얼마 전 해외연수에는 20명 선발인원 가운데 15명 이상이 특정지역 출신이었다"고 말했다. 아예 2∼3년간 해외로 나가있으면서 차기 정권 초기의 숙정 바람을 피하겠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김종혁·이영종 기자

kimch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