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난 겪는 고양시 고양동] 주민 2만명에 중·고교 '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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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주민 2만여명이 사는 곳에 중·고교 한 곳이 없어요."

서울 구파발과 인접한 신흥 아파트 개발지인 경기도 고양시 고양동 일대가 마구잡이식 소규모 아파트 개발로 심각한 학교난을 겪고 있다.

5천여가구가 들어서 있던 고양동에는 1998년부터 5개 아파트 단지가 잇따라 조성되면서 1천7백여가구가 늘어났으나 4년이 지나도록 초·중·고교가 하나도 세워지지 않았다. 기존 학교는 초등학교 하나뿐이다.

주민들은 지난해 5월 도 교육청에 학교 건립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관련 예산 책정까지 이끌어냈으나 이후 진전이 없자 '고양동 중학교 유치위원회'를 결성, 중학교부터 세우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유치위원장을 맡아 고양동 아파트부녀회 연합회·푸른 고양 지킴이 등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중학교 유치운동에 앞장서는 독자 조현주(趙賢珠·43·주부·고양시 고양동)씨와 함께 현장으로 나가 문제점을 짚어 보았다.

◇서울 원정 통학=4일 오전 7시30분쯤 고양동 버스정류장. 서울 은평구 방면으로 향하는 버스가 서자 초등학교 4∼6학년생으로 보이는 남녀 어린이 7∼8명이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간신히 올라탄다.

이어 중학생 세명이 만원버스에 몸을 밀어넣는다. 인파에 밀려 버스를 미처 타지 못한 초등학생 두명은 발을 동동 구른다.

초등학교 4,6학년인 두 자녀를 둔 趙씨는 "버스에 타는 초·중학생 대부분은 서울로 주민등록 위장 전입을 한 뒤 서울 은평구 일대 초·중학교로 원정 통학을 하는 것으로 봐도 된다"며 "어린 학생들이 관내에 학교가 없어 남의 눈을 피해 원거리 통학을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고양동 지역 중학생들은 관내에 중학교가 없어 버스를 갈아 타고 20∼30분씩 걸리는 인근 관산동·삼송동 등지의 중학교를 다녀야 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학부모들은 어차피 버스로 통학할 바엔 통학시간이 비슷하고 교육 여건이 좋은 서울의 중학교로 자녀들을 보내고 있다.

이는 관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고양초등학교의 학년별 학생수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학년은 3백83명(9개 학급)이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전학자가 많아 6학년은 2백42명(6개 학급)에 불과하다.

◇학부모 반발=趙씨는 "건설업체들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학교 등 최소한의 기반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소규모 아파트를 마구 짓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학부모 1백50여명은 지난달 26일 고양교육청으로 몰려가 시교육장을 면담, 학교 부지로 거론돼온 벽제관지 뒤편(고양동 산29번지)을 중학교 부지로 선정해 연내 착공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학부모들은 고양시청도 방문해 도시계획상 중학교 부지 지정 등 행정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오는 15일까지 교육청이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장기 집단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시 교육청 입장=시 교육청은 "지난해 말 고양동 그린벨트 지역에 고양중학교 부지를 선정했지만 지난 5월 건설교통부가 '학교부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어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5년까지 2천7백여가구가 입주할 예정인 고양동 고양2지구 아파트 단지에 이르면 2004년 3월 초·중학교를 한곳씩 건립할 예정이므로 고양동 일대 중학교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고양2지구 아파트 단지에 조성되는 초·중학교는 해당아파트 입주자 자녀들을 위한 학교일 뿐 고양동 전체 중학생을 수용할 수 없는 규모"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현주 독자,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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