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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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조등은 자동차의 얼굴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신모델을 내놓을 때 구모델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전조등이다. 같은 엔진에 비슷한 외형이라도 전조등만 확 바꾸면 전혀 다른 신차가 된다.

예전엔 평범한 모양의 전조등이 대부분이었다. 운전자의 시야를 밝혀주고 상대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기능만 수행하면 족했다. 독일의 카를 벤츠가 1885년 최초의 자동차를 발명했을 때 전조등은 둥근 반사경이 달린 카바이트 랜턴이었다. 원형 라이트 두개를 전면 좌우에 배치한 이 형태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그러나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엔 모양이 다양해 졌다. 특히 최근엔 뉴 쏘나타나 벤츠 C클래스처럼 라이트 두개를 비스듬하게 이어 눈을 부릅뜬 모양을 한 전조등이 유행하고 있다. 앞에서 보면 매우 공격적이다.

북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자동차들이 낮에도 라이트를 켜고 다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해가 짧은 겨울철이야 그렇다 쳐도 밤까지 훤한 여름철엔 왜 그럴까. 이곳에서 운전을 해보면 금방 이유를 알게 된다. 위도가 높아 해가 바로 눈높이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를 마주 보고 달리면 마주오는 차가, 등지고 달릴 때는 뒤에 따라오는 차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부시다. 라이트를 켜야 그나마 보인다.

이런 이유로 북구 나라들은 1970년대 이후 낮에도 전조등을 켜도록 의무화했다. 요즘엔 자동차 시동을 걸면 저절로 불이 들어 오게 돼 있다. 낮에 전조등을 끈 차는 거의 물정 모르는 외국 차다. 곳곳에 세워져 있는 '라이트를 켜시오'라는 안내문이 주로 영어나 독일어로 표기돼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북유럽 국가들이 낮에 전조등을 켜도록 의무화한 결과 교통사고가 10~3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도 버스·택시·화물차에 대해 낮에 라이트를 켜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들 차량이 낮에 불을 켠다고 지금보다 교통사고가 줄어들까. 이보다는 우리나라 교통사고 원인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과속·난폭운전을 단속하는 게 급하지 않을까. 시속 1백㎞ 이상으로 도심을 질주하는 차들이 아무리 대낮에 전조등을 켜봐야 소용 없다.

도시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독일처럼 곳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서라도 과속을 막는 것이다. 이도 안되면 시내버스나 택시들이 시속 60㎞ 이상 내지 못하도록 엔진을 고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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