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온 伊 디자이너 나폴리타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양복은 무조건 딱딱하고 불편한 옷이라는 생각은 오해입니다.자신의 몸에 잘 맞는 양복은 헐렁한 캐주얼 의류를 입었을 때 보다 오히려 더 편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맞춤양복 총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이탈리아 맞춤양복 디자이너 마리오 나폴리타노(64). 그는 "제대로 만들어진 맞춤양복은 몸과 따로 놀지 않아 제 2의 피부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맞춤양복의 역사가 수백년이 넘는 이탈리아에서도 젊은이들이 아르마니·페라가모 등 디자이너 브랜드의 양복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맞춤양복의 진가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맞춤양복은 오래 입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시즌에 따라 눈에 확 띌 정도로 디자인이 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아주 유행에 둔감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근엔 패션계 전반에 걸쳐 '스포츠 룩'이 인기를 얻으면서 맞춤양복도 보다 활동적인 디자인이 강세다. 나폴리타노는 "옷의 형태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전보다 밝은 색상을 많이 사용하고 주머니 모양이나 바느질 등을 보다 캐주얼하게 연출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급 소재를 사용해 옷을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것 역시 큰 흐름"이라고 전했다.

나폴리타노는 이번 총회에서 자신의 노하우와 최신 기술을 아시아지역 양복 디자이너들에게 소개했다.그는 "한국 양복 디자이너들의 옷 만드는 기술은 세계 일류"라며 엄지 손가락을 세웠다. 한국 남자들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유럽 남자들 못지않은 뛰어난 패션 감각을 지녔다"고 높게 평가했다.

세계주문양복연맹의 이사인 나폴리타노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열살 때부터 50년 넘게 맞춤양복 디자이너로 일해온 양복의 '장인'이다. 그의 단골 고객 리스트에는 이탈리아의 유명 정치인·기업인·체육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여전히 현업에서 뛰고 있는 그는 "양복 디자이너가 오랜 세월 갈고 닦은 기술을 총동원해 한 사람만을 위한 옷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예술' 그 자체"라며 자신의 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김현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