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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공행상에도 원칙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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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년 반가량 지난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어떨까. 액설로드는 여전히 오바마 옆에 있다. 백악관 선임고문이란 직함을 달고 미국 국내 문제에 대한 전략 수립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젊은 플루프는 보다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겠다며 공직을 사양했다. 그러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시 오바마의 특명을 받았다. 특장인 조직 만들기 능력을 살려 민주당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 초 강연회에서 만난 플루프는 줄곧 유권자들의 성향, 선거 구도 등 선거 이야기만 했다. 크게 보아 이들이 하는 일은 선거 전이나 후나 비슷하다. 지금껏 자신들이 잘해 왔다고 평가받은 영역의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선 누구도 이들이 내각의 멤버로 들어가거나, 오바마의 대외정책 또는 인사 문제 등에 관여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선거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은 한국에 비해 훨씬 노골적이다. 오바마의 하버드 로스쿨 친구들, 고향 시카고 친구들의 이름을 백악관, 정부 기관, 각국 대사 등의 명단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처럼 선거 공신들끼리의 다툼 같은 볼썽사나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논공행상을 하더라도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인사의 기본 원칙을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줄리어스 제나초우스키는 오바마의 하버드 동창이다. 오바마가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일 때 그 밑에 있었고, 선거 때는 통신·미디어 정책분야 책임자로 일했다. 오바마는 취임 후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그에게 맡겼다. 제나초우스키에겐 오바마와의 친분을 넘어 FCC에서 수년 동안 일한 경력이 있다.

대선 당시 오바마 캠프의 안보팀은 대단했다. 육·해·공군의 별 넷 출신이 넘쳐났다. 외교안보 분야의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약점이었던 오바마가 이들의 영입에 총력을 기울인 까닭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막상 취임 후 부시 정부의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를 유임시켰다. 자신을 도와준 장군들의 얼굴이 눈에 밟혀도 아프간 전쟁을 수행 중인 상황에서 게이츠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가를 포함해 어떤 조직이든, 수장은 사람을 골라 쓰는 재미를 가장 크게 느껴야 한다. ‘그 자리’와 ‘그때’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집어넣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맛보고, 반대의 경우엔 뼈아프게 고통을 느껴야 한다. ‘선거 공신’들의 추락을 보면서, 여차하면 상(賞)이 아니라 벌(罰)이 될 수 있는 논공행상의 두 얼굴을 새삼 깨닫게 된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