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자 로비로 장관 밀려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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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각으로 물러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내가 경질된 것은 보험 약가 정책에 저항하는 국내외 제약사의 로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폭탄적 발언을 했다. 사실이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정부 인사가 특정 업자의 입김에 좌우된다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입장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가.

지난 1월 말 취임한 전장관이 5개월여 만에 물러난 것은 다소 의외다. 그동안 인사나 업무 스타일 등에서 직원들과 마찰이 적지 않았고, 관련 단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무엇이 경질 사유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다고 그의 주장을 경질에 대한 불만 표시만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의약 분업 이후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전장관이 중점 추진해온 것이 보험 약가 제도 개혁이었다. 약값 인하 기준을 평균가에서 최저가로 바꾸고 약품을 재평가해 약값을 낮추는 약효 재평가 사업과 고가약 사용 억제책인 참조가격제 도입 등이 그 핵심 내용이다.

이에 대해 제약사는 강력히 저항하며 다양한 통로를 통해 압력을 행사해 왔다고 한다. 주로 고가약을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사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고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와 주한 미국대사 등 외국 대사 면담이 여섯차례나 이뤄졌다고 하니 통상 압박의 강도가 짐작된다. 어떤 제약사로부터는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협박전화도 받았다고 했다. 전장관의 주장은 심증만 있을 뿐 제약사의 로비가 과연 있었는지, 장관 경질에 행사됐는지는 아직 아무런 증거가 없다. 정부 인사 정책의 투명성을 위해서라도 그동안의 경과와 로비 여부에 대한 명확한 사실 규명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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