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연극배우 팬클럽 만세 흥행 보장하는 공연계 '붉은 악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건승정한'. 고사성어풍의 이 한자 조어(造語)는 어느 뮤지컬 배우 팬클럽이 내세운 모토다. 주인공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을 놓고 유령과 사랑의 쟁탈전을 벌이는 라울역의 유정한(31)이다.

그러니까 조어를 풀이하면 '유정한의 건승(健勝)을 빈다'는 의미다. 한 배우에 대한 사랑과 그의 발전을 바라는 팬클럽 회원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팬클럽 회원은 7백여명에 이른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달 30일 LG아트센터는 이 열성팬들로 부산했다. 이들은 등에 4각 도장처럼 '건승정한'을 새긴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고 유씨를 위해 마지막 응원을 나왔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주인공과 함께 폐막 파티를 열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전날 공연 중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해 마지막 날 출연이 불투명했던 유씨는 이런 열렬 팬들의 기원 덕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유씨의 경우처럼 배우들의 팬클럽 활동이 공연계에 청량제 구실을 하고 있다. 대부분 '그 배우가 좋아서'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 그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의 적극적인 구매세력이 되기도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붉은 악마'와 같은 역할을 공연계에서는 이들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화제작의 경우 이들의 활동은 더욱 뚜렷해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 유씨 외에 팬텀역의 윤영석·김장섭, 크리스틴역의 이혜경·김소현 등이 팬클럽을 갖고 있다.

물론 팬클럽이 이런 젊은 배우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연극계의 중견 스타인 박정자씨에게는 골수 팬들의 모임인 '꽃봉지회'가 있다. 이 회원들은 박씨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불러모아 공연의 흥행을 보장하는 보증수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박씨 공연의 '불패(敗)신화'는 이 꽃봉지회의 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들은 이처럼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팬들은 누군가 사랑할 대상이 있어 행복하다. 공연계의 발전을 위해 아기자기한 팬클럽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

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