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물건너간 北·美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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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미간에 절충이 이뤄지던 미국 특사의 방북이 무산된 직접적 원인은 북한이 이에 호응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달 29일의 서해교전도 악재로 작용했다. 미국이 북·미 대화를 서해교전과 연계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북한은 서해교전에 관한 미국의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북한의 태도를 보면서 대화를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칫 북·미 양국 내부에 강경파의 입지가 세지면 대화 무산을 넘어 긴장 국면이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미국의 대북 대화 태도는 일요일을 기점으로 강경쪽으로 기울었다. 북한군의 도발이 있었던 29일까지만 해도 국무부는 "북한이 응한다면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방북시키겠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전해왔다. 그러나 1일에는 대화에 관한 북한 반응과 서해교전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응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이번 사건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첫 군사 도발인 데다 대테러 전쟁으로 신경을 곤두세운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의 도발 시기도 미국의 특사파견 제안 다음날이자 월드컵 폐막 하루 전이다.

미국으로선 이번 도발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 수뇌부의 뜻이 아니라 해도 북한의 변화 의지를 다시 분석해봐야 한다고 마음먹은 듯하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의 시각으로는 지난 1월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이라크·이란 세나라 중 처음이자 가장 대규모의 군사 도발이 자행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회신을 하지 않은 것은 미국쪽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회담 날짜를 놓고도 미국측과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북·미 대화 주도권 문제에 부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면 핵사찰, 미사일 개발·수출 문제 등 수세적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는 점도 대화를 꺼린 요인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이번의 특사 방북이 무산됐다고 해도 대화의 문은 닫지 않겠다는 입장이나 북·미 내부의 강경 입장을 감안하면 대화 재개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국이 특사 방북 카드를 거둬들여 당혹해하고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서울=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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