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도발재발막으려면] 北의 공세적 교전규칙 감안 포괄적 새 對北정책 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서해교전은 최고조에 이른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우리의 시선을 냉혹한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이 교전은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 NLL을 둘러싼 국제법적 문제, 교전수칙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항상 재발 가능한 사안이었다. 이번 문제의 근원과 해결방법을 정치적 측면, 군사적 측면에서 분석해 본다.

편집자

대한민국 전체가 월드컵의 축제 열기 속에 마지막 3,4위전을 앞둔 지난달 29일 오전 서해상에서는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을 기습 공격해 아군 20여명이 사망 또는 부상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온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 축제에 재를 뿌리는 동시에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한반도 화해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엄청난 도발사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왜 이 시점에서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일까. 2002년 6월의 교전이 남북관계와 주변 정세에는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우리로서는 향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우선 1999년 6월 연평해전에서 참패한 이후 북한군은 북한 나름의 '교전수칙'을 개정해 공세적 전략을 수립했고, 이번 우리측 고속정이 '밀어내기'식 작전에 돌입하는 듯하자 바로 정조준 공격을 감행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북한 군부가 우리 군에 대해 설욕 보복을 준비하고 실제 선제공격을 계획적으로 감행했다면 문제는 보다 복잡하고 전략적 수준에서 살펴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현재 대외홍보와 외화벌이를 위해 사상 최대의 아리랑 축전을 개최하고 있다. 계획에도 없는 16일간의 연장공연을 감행하면서까지 남한측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고, 남한의 월드컵 경기를 녹화 방영하기도 했다. 북한의 오랜 숙원인 미국과의 대화도 2주 후로 예정돼 있다. 그러한 북한이 이 시점에서 남한 고속정을 향해 의도적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했다면 이는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개선과 북한의 대외개방을 추구하는 세력과 체제고수를 고집하는 세력간의 내부 갈등이나 충성 경쟁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최고지도자 김정일 위원장의 생각은 무엇이며 실제 그의 통제력은 어떤 수준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남는다.

둘째, 북한이라는 집단적 사고와 정책결정체로서의 전략목표와 이해관계를 통해 이번 서해 도발의 원인을 규명해 볼 필요도 있다. 대외개방은 하되 내부는 단속해야 하고, 남한의 지원과 협력은 필요하되 소극적인 남한 정부에 대해 불만족스럽고, 미국과 대화는 절실하지만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적·다중적 목표와 이해관계 속에 북한 지도부는 최선책을 강구하기 위해 고심했을 것이다. 한반도 긴장상황과 북방한계선(NLL)문제의 국제적 부각, 북한군의 실력행사 의지와 역량 과시는 이러한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최적의 대안이 아니었을까. 실제 서해 도발상황과 사태 이후의 북한의 태도를 볼 때 북한 최고지도부가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황으로 볼 때 북한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는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남북관계나 한반도의 상황은 완전한 평화정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모든 경우의 수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엄청난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번 북한의 서해 도발사태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믿되 검증하라'는 데탕트 시대의 금언을 잊고 북한의 초기단계 변화 움직임을 본질적 변화로 착각하거나 무조건적인 지원과 협력이 화해협력의 유일한 토대라고 믿는 오류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고 감격해하거나 자주통일이나 민족 공조의 정치적 슬로건에 지나치게 함몰되지는 않았던가도 심각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북한 해군이 공세적으로 '교전규칙'을 확립했다면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군사적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 군부가 군사적 모험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를 군사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한·미 동맹체제 및 주변국가들과의 유기적 협력체제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북한내 개방파와 보수파가 갈등 경쟁하고, 최고지도자가 필요에 따라 이들 경쟁집단에 힘을 실어준다면 화해협력과 대결, 변화와 체제고수에 따른 이득과 손실을 북한 지도부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햇볕정책 그 자체에 얽매이지 말고 보다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