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대단해…" 유럽언론 취재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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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의 요코하마 국제미디어센터는 지난 18일 저녁 철 지난 해수욕장처럼 썰렁했다.

일본팀이 이날 터키에 져 8강 진출이 좌절되자 북적대던 현지 기자들이 자리를 떠 30여명의 외신기자들만 한가하게 남아 있었다.

한국기자들은 TV 앞에 모여 앉아 초조하게 이탈리아전을 지켜봤다.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은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종이접기를 하기도 했다. 한 여성 봉사자는 기자에게 종이학을 만들어주면서 "우리는 졌지만 한국은 꼭 이기세요"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전반 5분 안정환이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18분 비에리에게 선취골을 내주자 실망하는 분위기가 압도했다. 한국기자 한명이 "열 좀 식히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갈 정도였다.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인 후반 40분쯤에는 또 다른 한국기자가 "안 되겠다. 좌판 접자(일을 끝내고 철수하자는 뜻)"며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잠시 후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기자들은 즉시 좌판을 다시 펴야 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던 연장 후반 12분쯤 안정환의 골든골로 경기가 끝났다. 한국기자들은 펄쩍펄쩍 뛰고 괴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 안았다. 함께 있던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이 부러움으로 한국기자들을 쳐다봤다. 그런데 옆에 있던 외신기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한 중국기자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본 뒤 자판을 세게 두들기고 있었다. 이에 앞서 그는 이탈리아가 찬스를 놓칠 때마다 "아-"하며 탄성을 질렀었다. 이탈리아팀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기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경악하듯 놀라며 한국기자를 상대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 한 영국기자는 "한국팀이 몇 달 새 왜 이렇게 강해졌나" "한국이 결승까지 오를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등의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곧이어 또 다른 유럽 기자가 몇 가지만 묻겠다며 붙잡았다. 계속 붙잡혀 있다보면 숙소로 가는 마지막 전철을 놓칠 것 같아 도망가다시피 미디어센터를 빠져 나올 정도였다. 기자는 사쿠라기초(櫻木町)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일본인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소리가 들렸다.

"이탈리아가 골든골을 먹고 한국에 졌다며. 대단해!"

"이번 대회가 FIFA월드컵 한국·일본이라서 그런가. 한국은 8강에 오르고 우리는 떨어지고."

일본 땅에서 한국인임이 진정 자랑스러운 밤이었다.

요코하마=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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