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에 힘 보태준 가슴저린 유년의 추억:홍사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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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지금도 경기도에서 아름다운 학교 베스트10에 꼽힌다는 해운초등학교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해운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학교선생님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갔고 다시 내려와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이곳에서 보냈다.

지금은 서울에서 한시간 거리의 관광명소로 변했지만 옛날만 해도 이 지역은 바닷가 오지 중 하나였다. 전깃불은 물론 들어오지 않았고 서신으로 가는 우마차 길에는 일년 내내 자동차 바퀴자국을 볼 수 없는 교통 불모지였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5리 정도이고 검정고무신 일색인 우리들 조무래기들은 풀이 듬성 듬성 난 논두렁 밭두렁 길을 지나 장정들도 무서워 한다는 느릿재 고개를 넘어 학교에 갔다. 학교 뒷동산은 지금도 화성시가 적송보호지역으로 지정해 잘 보존할 만큼 아름드리 소나무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사철 향긋한 솔바람을 뿜어냈다.

우리 가족은 그 시절 아버지의 일시적인 낙향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6·25 때 인민군에게 잡혀가 한많은 죽임을 당하신 할아버지가 물려준 수만평의 땅을 '할아버지가 맡겨놓은 땅'이라며 한 평도 팔 수 없다는 나의 아버지.

그 아버지와 더불어 가족 모두가 경제적 궁핍을 당하던 시절이 그 때였다. 장려쌀을 얻어 첫 해 농사를 지으신 아버지는 몇 년 동안 빚에 쪼들려 살았다. 그 신산의 세월 속에서도 나는 어머니의 권유로 학교에서 늦은 밤까지 과외공부를 했다.

밤 늦도록 과외공부를 하고 돌아오던 길, 나는 고개 초입에서 등골이 오싹하는 공포감에 매일 떨었다. 그 때마다 칠흑과 같은 밤 저 편에는 언제나 희미한 등불을 밝히며 다가오던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가 '하찮은 일'은 어머니에게 맡기고 무책임하게 잠든 밤, 밤이슬에 바지고쟁이를 다 적시며 혈혈단신 그 무서운 느릿재 고개를 넘어온 어머니를 통해 나는 버려진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이따금 매몰찬 바람에 등불이 꺼지면 등피 속으로 성냥불을 연신 집어넣던 어머니는 나의 두려움을 씻어주려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고향의 옛집 대문 앞에 와서야 끝나곤 했는데 독서를 많이 하신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 주제는 역사 속의 위인들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이야기는 『삼국유사』 등에서 발췌한 것들이었는데 여기에다 자신의 상상력까지 그럴싸하게 보태주시던 솜씨가 보통은 아니었다.

비록 남루하고 궁핍한 시절이었지만 나는 이 고향 초등학교에서 보낸 3년의 시절을 잊을 수 없다. 그 유년으로 가는 추억에로의 통로에는 그래서 언제나 이 학교가 오래된 목백일홍 꽃을 피우며 서 있다.

학교를 오가면서 어머니와 함께 했던 가슴저린 추억이 밀계(密契)처럼 돋아나 고단한 삶 속에 힘을 보태주던 사연들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도 우리의 생명은 용솟음치나니.

<숙명여대 교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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