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품은 비구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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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11면

걸상에 앉아 앞산을 즐깁니다.
산이 점점 짙어져 푸름에서 검푸름으로 깊어집니다.
밀치며 들어온 비구름이 산을 품었습니다. 온통 비구름입니다.
비구름에서 소리가 솟아납니다. 무심히 흘렸던 소리가 또렷이 들립니다. 귀가 열립니다. 산을 듣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잎이 넓은 감나무에 튕기는 소리, 솔잎을 스치는소리, 물 항아리를 때리는 소리, 처마 끝에 몰려 떨어지는 소리가 장단고저로 변주됩니다. 생각이 내려앉습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즐거움은 잠시였습니다.
켜켜이 두께를 더한 비구름이 거세게 비를 뿌립니다.
길 따라 쏟아지는 흙탕물이 만만치 않아 슬슬 걱정이 앞섭니다.
우아했던 빗소리가 이제는 거센 파도소리 되어 마음을 칩니다.
탈이 난 배수로를 게으름으로 두 눈 지그시 감아버린 탓입니다.
산수 간에 집을 짓고 사는 복이 어디 거저 오겠습니까?
복 짓는 몸 고생을 해야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 안 그렇겠습니까?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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