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의 월드컵 감상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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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35면

정말 축구가 대세입니다. 모이면 축구 얘깁니다. 그러기 충분한 시절이죠. 누구나 축구 전문가가 됐습니다. 지하철에서 옆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분석도 깊숙합니다. 사실 우리네는 정치에 일가견들이 있지요. 하지만 요샌 시절이 시절이라 정치보다 축구 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세종시도 4대 강도 천안함도…. 축구가 정치를 삼키는 때입니다.

On Sunday

월드컵에서 선수들의 태도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주영 선수가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책골을 넣었죠. 경기를 어렵게 하는 치명적인 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영표 선수는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고 감쌌지요. 김남일 선수도 나이지리아전에서 페널티킥을 내줬습니다. 그때는 박 선수가 다가가 “형, 괜찮아요”라고 위로합니다. 선수들이 ‘네 탓’을 하면 그 팀은 잘될 리 없습니다. 한국 대 그리스전에서 조르바스 골키퍼가 수비 실수를 한 선수에게 다가가 몸을 흔들며 화를 내는 장면을 기억하시는지요. 선수가 감독에게 욕을 한 프랑스도 있습니다. 모두 조별예선서 탈락했습니다. 정치에선 네 탓하고 싸우는 게 다반삽니다. 협상하지 않고 양보하기 싫으면 투쟁하는 거거든요. 언제나 으르렁댔던 여야, 몇 년째 계파를 나눠 싸우는 여당은 모두 예선 탈락 감입니다.

허정무 감독이 보여준 ‘소통 리더십’은 지도자라면 배울 만합니다. 허감독은 그리스전을 앞두고 코칭스태프 없이 선수들만의 자율토론 시간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또 ‘감독→선수’의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2인자’ 박지성 선수를 내세워 ‘선수→선수’ 간 소통을 자유롭게 한 것도 감독·선수 간 거리를 좁혔다지요.

허 감독의 모습에선 이명박 대통령 생각이 났습니다. 경기마다 감독에 대한 여론의 간섭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 패하고 난 후 원성은 ‘압박’으로 이어졌지요. 언론은 언론대로, 네티즌은 네티즌대로 말입니다. ‘염기훈 카드 실패’라느니, ‘박지성을 중앙 미드필드로 내보낸 게 문제’라느니. 하지만 감독은 그런 ‘민심’에 흔들려선 안 됩니다. 거기에 휩싸여 선수 기용에 변화를 준다든지, 전술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감독이 선수를 가장 잘 압니다. 그의 소신대로 결정해야죠. 그의 판단이 틀리면 곧바로 책임을 집니다. 시간도 오래 안 걸립니다. 딱 90분이면 됩니다.

대통령의 결정은 축구 감독과는 다르죠. 축구야 지면 4년 뒤를 기약하면 되지만 정책 결정이 어디 그런가요. 대통령도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면 반대가 있어도 그걸 관철시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감독과 달리 민심 위에 서야 합니다. 판단이 옳아도 민심이 받쳐주지 않으면 성과가 안 나기 때문이죠. 아니라면 제대로 민심을 설득해야죠. 정치가 그런 거죠. 정치 사안은 축구처럼 금방 결판이 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반대가 이어지면 동력은 더 떨어집니다. 어떤 일은 대통령 임기 후에나 결과를 알 수도 있고요. 정치엔 축구에 없는 야당도 있습니다.

세종시 수정안이 대표적입니다. 대통령은 ‘굽은 것을 바로 펴는’ 심정으로 수정안을 내세웠지요. 결국 안 됐습니다. 지방선거 민심이 가로막은 거죠. 새겨볼 대목입니다. 월드컵에는 정치인들이 읽어볼 만한 코드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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