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잔디밭에 주차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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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니,잔디밭에 주차하면 어떡해요!"

28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10여명의 시민들이 잔디밭에 빙 둘러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잔디가 너무 푸르다" "공원에서 먹는 김밥 맛이 최고야"라며 일행은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앉아 있던 잔디밭으로 승용차가 쑥 들어섰다. 운전자는 잔디밭에 차를 대더니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화가 난 나들이 일행이 쫓아가서 따졌다. "잔디밭에 주차하다니 도대체 상식이 있는 사람이냐" "당장 차를 빼라"고 쏘아붙였으나 운전자의 대답이 뜻밖이었다.그리고 "여긴 주차장"이라며 근처의 팻말을 가리켰다. 팻말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잔디 주차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앞에 마련된 '잔디 주차장'이 화제다.

언뜻 보기에는 잔디밭인데 자세히 보면 주차장이다. 월드컵공원 운영관리소 온수진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잔디밭 주차로 해프닝이 생긴다"며 "자초지종을 듣고난 시민들은 대부분 탄성을 지른다"고 말했다.

잔디 주차장의 비밀은 '잔디보호용 특수블록'이다. 4.6㎝의 두께에 손가락 굵기만한 구멍이 촘촘하게 나있는 블록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주경기장 건설단 이쌍홍(49)주임은 "블록의 구멍 사이로 잔디가 올라온다"며 "주차를 하더라도 타이어가 잔디 뿌리에 닿지 않아 손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잔디 주차장은 승용차 1백57대를 주차할 수 있는 규모다.

잔디 주차장의 잠재적인 파급력도 클 것으로 보인다.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둘러싸인 도심의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에 잔디 주차장이 도입되면 녹지 확보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주임은 "잔디 주차장은 생태 주차장"이라며 "차가 빠져 나가면 주차장이 순식간에 녹지로 바뀐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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