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앵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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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런데 내가 마루에 앉자 아이들이 작은 사기그릇을 들고 나에게 뛰어왔다. 아이들은 수줍어하며 그릇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아주 빨갛게 익은 앵두였다.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앵두나무에서 막 땄다고 했다. 아이들은 말 이전의 말로 사물 혹은 세계와 응답한다더니 앵두는 벌써 아이들의 일부가 된 듯이 보였다. 아이들은 붉게 잘 익은 앵두가 마냥 신기하고 또 그것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땄다는 것에 설레어 얼굴빛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서 먹어 보라는 듯 입안에 앵두를 넣고 우물거리며 웃었다.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앵두가 익는 계절이 되었다. 앙증맞게 동글동글한 앵두. 앵두가 익는 때는 날이 후텁지근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들에서 돌아와 흙더버기 맨발을 찬물로 씻고 또 장화를 씻는 그런 유월의 저녁 곁에는 앵두나무가 서 있었다. 첫사랑의 느낌으로 홍조를 띠던 소녀의 뺨 곁에는 앵두나무가 서 있었다. 별서(別墅)의 마당 한쪽에는 키 작은 앵두나무가 서 있었다. 낮이 가장 긴 때에, 아주 한가한 낮에, 낮이 아주 느리게 지나고 있다고 느낄 때에 앵두를 땄던 기억이 새롭다. 붉게 익어 새콤한 맛을 뽐내며 생(生)의 입맛을 다시 돌게 하던 게 이 앵두였다. 그러니 앵두는 단순히 작은 열매가 아니라 심드렁한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어떤 것이었다. 앵두는 데면데면하거나 게으른 기색이 없다.

고영민 시인의 ‘앵두’라는 시가 있다.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 왔네 / (…) //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이 시에서처럼 앵두는 홀리듯 애교 많고, 예쁘지만 새치름한 아가씨의 용모와 성격을 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앵두는 낙담 속에서도 미소 짓는 얼굴이요, 생애 단 한번의 환희 같다.

산에는 푸른빛이 울연하고, 제비는 날고, 오디는 까맣게 익고, 산길에는 산딸기가 붉다. 시골에 가서 본, 밖에서 본 나무와 새와 열매들이 나의 일부가 되는 것에 행복했다. 앵두는 와서 나의 일부가 되었고, 피톨이 되었고, 그리하여 나는 이 여름에 앵두처럼 붉게 익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