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가까워 왔는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월드컵까지 이제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경기장은 모두 완성됐고 거리질서네 기초질서네 하고 캠페인이 한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테러방지 훈련 장면이 TV를 타고 있고 터널 청소다 뭐다 하며 세상이 온통 야단이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 제전이다 보니 충분히 호들갑을 떨 만도 하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를 찾을 것이며 그 사람들은 어디서 정보를 얻고 이 땅을 밟을 것인지 솔직히 걱정이 많다.

인터넷網만 좋아 뭘하나

한국은 인터넷 대국이다. 고속전용망 보급이 세계 제일이고 인터넷 이용자 수 세계 6위를 자랑한다. 하나에 2백50원짜리 붕어빵이 인터넷 주소를 갖고 있어도 크게 놀라지 않을 정도가 됐다. 인터넷 인프라가 이 정도라면 월드컵 손님들은 마치 옆동네 나들이하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이 나라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론은 정반대다. 없는 호텔을 당장 지어댈 수도 없고 부족한 볼거리를 엉터리로 대령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있는 자원만이라도 그렇게도 일본에 앞섰다고 자랑해 마지 않는 인터넷에 올려놓을 수 있었으련만 정보내용(콘텐츠)에 들어가면 일본에 한참 뒤지고 있다. 내용도 빈약하고 그마저 외국어가 병기돼 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라 외국인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월드컵 관광객 수는 한·일 양국이 다분히 함수관계에 있다. 볼거리·먹거리·잠자리 수준과 그에 관한 정보 수준에 따라 여행자 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숙소를 정하는 데 결정적인 가격정보만 해도 특급호텔 이외에는 어디에도 없다. 설렁탕이 뭔지, 비빔밥이 뭔지 알 턱이 없는 외국인에게 인터넷에 사진 한 장 제대로 올린 음식점이 거의 없다. 외국인 상대 월드컵 매표가 일본에 비해 부진했던 것도 다 까닭이 있었던 셈이다.

얼마 전 일본 이시카와(石川)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다. 이 지방은 대도시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인 데다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곳 여행정보를 인터넷에서 찾다가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일본을 제쳤다는 그동안의 선입견이 너무나 황당한 환각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공항에 내릴 때 본 그들의 휴대전화가 우리 것보다 조금 크고 투박한 데서 잠시 위안(?)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관광정보를 보고부터 정보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콘텐츠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해도 실감하지 못하는 당국자들을 위해 구체적인 얘기를 하겠다. 우선 이시카와 현(縣)의 41개 시·정·촌(市·町·村)이 예외 없이 홈페이지를 갖고 있었고, 관광객에게 필요한 기초 정보를 완벽하게 정비해 놓고 있다. 지역 상공회의소와 관광협회 등이 관내 관광자원을 모아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있고, 이밖에 수많은 포털들이 이러한 홈페이지를 종횡으로 엮어 놓고 있다.관청의 홈페이지에서 이런 자료들을 모두 링크시켜 놓고 있었다.

필자가 여행한 곳이 시골(노토 반도)인데도 여관 주인과 4~5차례 e-메일을 주고 받으며 예약을 끝낼 수 있었다.e-메일 속에는 버스 터미널에서 여관이 2~3분 거리니 택시 타지 말라는 얘기, 비수기를 이유로 숙박비를 조금 깎아주는 호의도 포함돼 있었고 우리가 다녀간 것을 계기로 자기들도 국제화를 서둘러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들어 있었다. 단순히 침식을 사고 판 거래가 아니라 정감을 주고 받은 친교였다.

日선 여관예약 e-메일로

정부가 한 세기에 한 두 번 있을 둥 말 둥 하는 이런 기회를 시장에만 맡겨 놓았다면 정보화의 보편적 서비스 이념을 오해하고 있거나 정보화 격차(디지털 디바이드)의 폐해를 과소평가하고 있지는 않나 싶다. 정보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인프라) 누구의 필요에도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콘텐츠)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락·게임은 시장에 맡겨 놓을 수 있지만 장노년층의 인터넷 사용 능력(리터러시) 개발은 국가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국자들은 일본 이시카와 지방의 각종 홈페이지를 꼭 검색해보기 바란다. 아직 자력으로 검색할 수 없는 고관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과외수업이라도 받을 것을 권고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