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민수품 반입 허용” 이스라엘 ‘3년 봉쇄’ 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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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스라엘이 20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조치를 완화했다. 원칙적으로 군수품을 제외한 모든 민수품의 반입을 허용했다. 본격적인 봉쇄가 시작된 지 3년 만에 나온 조치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 “식품·건축자재 등이 포함된 기존의 긴 금수품 목록을 무기·전쟁물자에 한정된 간략한 목록으로 대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 등 외신은 이번 조치가 지난달 31일 발생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구호선단 공격 사건 이후 악화된 국제사회의 여론을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150만 명 주민 숨통 트일 듯=이스라엘은 2007년부터 가자지구를 봉쇄해 왔다. 2006년 선거에서 승리한 반(反)이스라엘 성향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실질적으로 가자지구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다. “이란 등 적성국에서 가자지구로 무기가 공급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무기류는 물론이고 철근·시멘트 같은 건축자재까지 반입을 막았다. 벙커·로켓 발사대 등 하마스의 군사시설 건축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가자지구 주민 150만 명의 삶은 더없이 피폐해졌다. 경제는 붕괴됐고 건축자재 반입이 막히면서 2008년 12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파괴된 주택·공장 등 건물 수천 채가 2년째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이번 봉쇄 완화 조치는 가자지구에 일단 급한 ‘숨통’을 틔워 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측은 원칙적으로 “무기류를 제외한 모든 민수품을 풀겠다”는 입장이다. 군사·민간용 양쪽으로 다 쓰일 수 있는 물자의 경우 재평가 과정을 거쳐, 유엔이 지원하는 주택건설 프로젝트와 같이 민간용이 확실할 경우 반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단 해상 수송로에 대한 봉쇄 조치는 유지할 방침이다.

◆미·EU “환영”, 하마스 “기만”=이스라엘의 봉쇄 완화 결정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세계는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조치로 가자 주민들의 삶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이달 1일로 예정됐다 이스라엘의 구호선단 공격 사건으로 미뤄진 미·이스라엘 정상회담도 다음 달 7일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다.

미국·유엔·EU·러시아의 중동특사인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이스라엘의 이번 조치를 “대단히 중대한 진전”으로 평가했다. 이스라엘은 블레어 전 총리가 네타냐후 총리를 만난 직후 이번 조치를 발표했다.

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결정을 “국제사회의 압력을 피하기 위한 기만”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지아드 알자자 장관은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조치가 전면 해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도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 봉쇄를 완전히 푸는 것만이 가자지구 내 150만 팔레스타인인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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