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일산 신도시 지역 일부 은행 계좌 없으면 공과금 안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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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기도 일산과 분당 신도시 지역 일부 은행에서 거래 고객이 아니면 지로 납부를 받지 않아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들 은행에서는 창구가 번잡하다는 이유로 지난해 11월부터 '공과금 바로 맡김 제도'를 도입하면서 공과금 납부를 회피하고 있다.

이 제도는 해당 은행 고객에게만 신청서를 주고 통장 계좌번호와 비밀번호·금액 등을 기재·서명케 한 뒤 공과금 납부용 봉투에 넣어 우체통 크기의 '바로 맡김 함'에 투입토록 하고 있다.

은행은 접수된 지로 납부서를 일괄 수거해 통장 이체 방식으로 처리한다. 영수증이 필요하다고 기재하면 우편으로 영수증을 보내준다.

분당 구미동에 사는 주부 박영순(37)씨는 최근 동네 은행에서 공과금을 내려다 "창구에서 지로 납부를 받지 않는다. 거래 고객이면 '바로 맡김 센터'를 이용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이 은행 통장이 없었던 朴씨는 통장을 새로 만들기가 번거로워 인근 우체국에서 공과금을 냈다.

일산 후곡마을 주부 유영옥(41)씨는 최근 전기료·전화료 등 공과금과 우유값을 납부하려고 근처 은행을 찾아가 번호표를 뽑고 20여분을 기다렸으나 헛수고였다.

차례가 돼 공과금을 내려 하자 창구 직원은 "거래 고객이 아니면 받지 않는다"며 수납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왜 갑자기 공과금을 받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다른 은행에 가보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분통을 억누르며 인근 은행 두 곳을 뒤진 끝에 공과금을 납부할 수 있었다.

유씨는 "금융기관이 공익성을 외면하고 예금 유치에만 나서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또 같은 마을 주부 金명숙(39)씨는 "지난달 말 은행에 전기료·전화료·신문대금 등을 내러 갔으나 '거래 고객이 아니므로 공과금을 받지 않는다'는 창구 직원의 말에 할 수 없이 통장을 만들고 통장 이체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金씨는 "금융기관들의 이같은 조치는 주민들의 편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불편만을 줄이려는 횡포다. 금융당국은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로 납부를 이용하는 사회복지시설과 우유 대리점 등 업체의 반발도 적지 않다. 이들 시설과 업체 관계자들은 "공과금과는 달리 기한 내 납부하지 않더라도 과태료가 붙지 않기 때문에 은행에서 지로 납부를 거부하기 시작한 뒤 눈에 띄게 납부율이 떨어졌다"며 은행을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측은 "창구에서 공과금을 받을 때 수수료로 건당 1백~1백50원을 받지만 인건비 등 처리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면서 "월말이면 지로 납부하는 사람들로 창구가 북새통을 이뤄 고객 서비스 향상을 위해 내린 조치"라고 말했다.

전익진·박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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