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재 "黨權 내놓지 않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19일 당 내분 수습책을 내놨다. 오는 5월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와 총재로 동시에 선출되더라도 총재권한대행 체제로 가겠다는 게 골자다.

李총재 자신은 당권은 갖고 있되 당무에서는 손을 떼고, 대통령 후보로서 선거운동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비주류 요구대로) 당권·대권 분리는 사실상 실현되는 것"이라는 게 李총재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내분 사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김덕룡(金德龍)·홍사덕(洪思德)의원과 비주류 의원들이 주장한 대선 전 당권·대권의 확실한 분리, 집단지도체제 도입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金·洪의원은 중국 방문(21~23일)에서 돌아온 후 거취문제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의원의 동반 탈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李총재의 수습책은 도리어 동요와 분란의 새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밤 사이 뒤집힌 지도체제=18일 李총재는 전당대회에서 총재 경선에 나가지 않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다. 자연스럽게 당권·대권을 분리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만하면 김덕룡·홍사덕 의원을 붙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 총재단 회의를 거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주류측과 거리가 있는 최병렬(崔秉烈)·이부영(李富榮)부총재가 선약을 이유로 회의 도중 자리를 뜬 뒤 기류가 급변했다고 한다.

남은 주류 부총재들은 "총재가 당권을 놓으면 당력을 대선 운동에 집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주류의 반발보다 단결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결국 李총재는 당초 생각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회견은 李총재가 얼마나 당권을 중요시하는지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李총재가 부총재 경선 1위 득표자에게 총재권한대행을 맡길 생각임을 밝혔지만 당내 역학관계상 그 사람은 李총재와 가까운 주류일 가능성이 크다.

"李총재가 포용과 배제, 양보와 장악의 갈림길에서 각각 후자를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로써 '李총재 1인 지배체제'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조치 없는 '측근 정치'=李총재는 "측근을 빙자한 불공정한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으로 당 운영과 부총재 경선 과정에서 측근들이 공정하지 못한 일을 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측근 정치'의 실체와 폐해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오해를 일으킬 문제가 있었다면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만 했다.

당내 다수 의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측근 정치'에 대한 가시적 조치는 없었다. 일각에서 측근으로 알려진 일부 중진의 부총재 경선 불출마 등 백의종군 주장이 나왔으나 李총재는 수용하지 않았다.

◇주변 정리 다짐=李총재는 호화 빌라 거주에 대해 "사려 깊지 못한 처신"이라며 다시 사과했다. 곧 이사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월 미국 하와이에서 출생한 손녀에 대해선 "국내법에 따라 출생 신고를 마쳤다"고 밝혔다. "앞으로 가족들이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다"고도 했다.

李총재가 이처럼 두번이나 고개를 숙인 데 대해 한 측근은 "호화 빌라 파문 등 총재 주변의 문제가 당 내분보다 표를 더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