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건 피붙이뿐” … 북한 후계구도, 장성택에게 맡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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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림 북한 총리

7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12기 3차 회의는 국방위원회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친정 체제 강화와 경제부문을 주축으로 한 인사 개편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김 위원장이 매제(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 노동당 부장을 국방위 부위원장에 임명한 대목은 후계 문제와 관련해 눈길을 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를 지난해 초 개편하면서 위원으로 진입시켰던 장성택의 권한을 이번에 더욱 강화한 것이다.

북한은 최근 군부 실세인 김일철 국방위 부위원장을 ‘고령’(80세)이란 이유로 퇴진시켰다. 하지만 새로 총리에 임명된 최영림은 81세란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방위에서 군부의 위세를 줄이고 장성택의 입지를 넓혀주려는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점에서다. 후계구축을 챙겨 온 또다른 실세 이제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2일 교통사고로 숨졌다. 정부 당국자는 “조명록 제1 부부장도 노환 등의 요인으로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라 장성택이 국방위를 사실상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성택의 약진은 북한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의 셋째 아들 김정은(26)의 후견인 역할을 김경희·장성택 부부에게 맡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보 당국은 김정일이 2008년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회복된 후 ‘믿을 건 피붙이뿐’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힌 것으로 관측해왔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유고 사태 시 장성택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육해운상을 지낸 경제 전문가인 김영일 총리를 전격 교체한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김영일은 지난해 11월 말 단행된 화폐개혁의 책임자다. 노동당 쪽에서 화폐개혁을 추진한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이 총살당했다는 설이 나왔다. 조봉현 기업은행연구소 연구위원은 “화폐개혁의 부작용과 외자유치 부진에 따른 문책성 인사로 보인다”고 말했다.

곽범기 등 3명의 부총리가 소환됐고 문화·선전 부문의 전문가인 강능수 등 6명이 부총리에 임명됐다. 기계공업성과 전자공업성을 부총리급 부서로 격상시킨 것은 김 위원장이 향후 이 분야를 챙기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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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공업상과 식료일용공업상을 교체한 것은 올 들어 북한이 공언한 ‘인민생활 향상’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때문으로 보인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리 등 ‘소환’조치가 매우 공개적으로 나왔다는 건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4월 최고인민회의 12기 2차 회의를 연 북한이 두 달 만에 재개최하자 다양한 관측이 제기됐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대응이나 김정일 후계에 대한 결정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결국 내부 문제를 추스르는 데 논의의 초점이 모아졌다. 총리 경질 등 경제 분야 손질은 지난달 초 이뤄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따른 후속조치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최영림의 총리 임명에서 나타나듯 새로운 세대로의 교체가 아니라 과거 인물의 재기용이란 점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조봉현 연구위원은 “중국을 다녀온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보다는 오히려 자력갱생 쪽으로 경제를 몰고 갈 것임을 예고하는 인사”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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