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대담] 위기맞은 방송위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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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는 3월 출범 2주년을 맞는 방송위원회가 제 위상을 찾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다.

김정기 방송위원장은 지난 18일 방송채널정책 혼선에 책임을 지고 중도하차했다. 지난해 11월 방송채널 정책 발표 이후 방송위는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다.

채널 정책에 반대하는 지역민방.지방MBC 대표들이 연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으로 몰려와 농성을 벌였고 경인방송.기독교방송 등이 줄줄이 행정소송을 냈다.

'방송 독립'의 거창한 기치를 들고 출범했지만 방송위원회는 제대로 일도 해보기 전에 위기에 처했다.

한태열(韓泰烈.인하대 언론정보학)교수와 최민희(崔敏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사무총장이 본지 홍은희(洪垠姬)논설위원의 사회로 방송위원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봤다.

▶방송위장 사퇴를 몰고온 위성방송의 지상파 TV프로그램의 재송신 결정에 대한 견해는.

한태열 교수=이해당사자들과 제대로 합의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SBS와 MBC의 위성 재송신 2년 유예라는 미봉책으로 성급히 허가 결정을 내린 것이 문제다. 법상 프로그램 재송신은 KBS와 EBS로 규정돼 있는 만큼 방송위가 나설 일이 아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문제는 방송사끼리 알아서 하도록 놔둬야 한다. 매체융합 시대에서 세계의 흐름은 시장논리다. 앞으로 방송정책의 기조는 시장 기능에 힘을 실어주는 쪽이라야 한다.

최민희 사무총장=이 문제를 시장 논리에만 맡겨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지상파 방송은 힘이 너무 세고 케이블이나 지역방송은 소규모인데 어떻게 공정한 경쟁이 되겠는가. 처음부터 지역 방송사들이 타격을 받을 줄 알면서 MBC와 SBS를 재송신한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이는 로비나 외압에 흔들린 결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위성방송의 재송신 문제는 해법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최=SBS는 엄연히 서울의 지역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전국방송처럼 돼 버렸다. 서울 지역 민방이 위성을 통해 지방에 재송신한다면 지역방송들은 자생력이 없어진다. 지상파 방송국은 위성방송을 통한 프로그램 재송신으로 그 세력을 더 크게 하려 하고 콘텐츠가 마땅찮은 위성방송은 지상파 프로그램이라도 받아 출범하고 보자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일이 이렇게 됐다. 하루라도 빨리 지역방송 발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각 이해집단의 사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지역방송사들의 자생력이 없는 상황에서 MBC와 SBS의 지상파 재송신은 무리가 있다. 지역방송사들의 자생력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그 다음에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송신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옳다.

▶방송위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그 원인은.

한=방송위의 권위가 추락해 거대 지상파 방송이 꿈쩍도 안한다.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방송위의 전문성 결여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방송위원 9명은 물론 사무국 직원들에게서 방송에 관해 전문가란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내부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면 외부 전문가의 조력으로 보완할 수 있는데 방송위의 외부전문가 활용 또한 '자문 따로,결정 따로'였다.

최=위원 선정이 가장 문제다. 방송법령의 위원 선정 규정이 구체적이고 세밀하지 못하다 보니 방송과 관련이 없는 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위원 중에는 심지어 특정 당에 적을 둔 사람도 있었다. 9명의 위원 중 상임위원이 넷이고 비상임위원이 다섯명인데 후자의 경우 자신의 일을 하다 회의만 참석해 현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회의에 임하는 이도 있다. 이러니 위원회가 잘 돌아가겠나.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로비에 밀리니 결국 수장이 임기도 못 채우고 내려오지 않는가.

▶방송위원회 문제를 방송위원이나 직원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있나.

한=방송법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오늘의 방송은 지상파 방송뿐 아니라 케이블.위성방송이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현행 방송법은 지상파 중심이다. 더욱이 지금은 매체융합 시대다. 미래는 방송과 신문의 융합도 가능하다. 방송의 개념부터 새롭게 정립하고 매체변화를 감안한 법률개정이 시급하다.

최=현행 방송법이 방송위원회에 전권을 주지 않는 것이 문제다. 심도 있는 방송영상 정책에 관한 것은 문화관광부와 합의를 거쳐야 하고 방송기술에 관한 것은 정보통신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방송위원회가 독자적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송위는 외풍에 쉽게 흔들리게 될 수밖에 없다.

▶2년 동안 방송위원회의 성과는 없었나.

한=위성방송과 홈쇼핑 채널 사업 허가 등 몇가지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토대는 닦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상황이 보여주듯 그 역량은 부족했다.

최=방송위원회의 탄생이 가장 큰 의미다. 그간 1백% 정부 손에 매달려 있던 방송을 협의기구에서 인허가권 등을 갖게 됐다. 관 주도 당시와는 달리 위성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나름대로 학자나 방송 관계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절차를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권한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아날로그인 지상파의 디지털화 방식 선택도 뜨거운 감자다.

최=정통부는 미국식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추세는 유럽식이다. 비교실험 결과도 유럽식이 나은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데도 정통부는 미국식을 고집한다. 잘못한 것을 전혀 번복하지 않으려는 관료적 발상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도 방송위는 적극적인 역할을 맡지 않고 회피했다.

한=그 문제에 대해서 단정적 결론은 위험하다. 정통부가 미국식을 택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술적인 조건뿐 아니라 여러 가지 국제경제 상황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기술 문제에서 방송위의 기능이 모호한 것은 문제다.

▶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견해는.

최=방송위원장은 물론 부위원장까지 청문회를 해야 한다. 정보 공개 차원에서 위원장의 재산은 물론 과거 경력을 낱낱이 검증해야 한다. 그래야 위원장의 권위가 선다.

한=인사청문회는 찬성하지만 부위원장까지 할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방송위원장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다.

▶방송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나.

한=거대한 방송 3사, 문화관광부, 정통부 등 관의 입김에 맞설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전문성과 함께 사회적으로 신망 받는 중진이 필요하다. 최소한 둘 중 하나라도 갖춰야 한다.

최=같은 생각이다. 여기에 도덕성과 청렴성을 더 갖춰야 한다고 본다. 현재 방송위원장은 위원간에 호선하도록 돼있다.'방송위원추천 30인단'등 추천제도 장치를 마련해 위원 선정부터 정계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방송위원회 정책 과정이나 사무국 운영에 관한 정보 공개는.

한=정보 공개는 법률이 정한 국민의 권리로 찬성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융통성은 필요하다. 각 방송사간의 이해가 엇갈리는 인허가 사항에 대해서는 전 과정이 공개되면 곤란하지 않겠나.

최=이해가 엇갈리는 민감한 사안일수록 더욱 공개해야 한다. 나아가 중요정책의 경우 '정책실명제'도 도입해야 한다.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생명.신체의 위협이 아니라면 회의 과정을 다 공개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해야 방송위가 바로 선다.

사회=홍은희 논설위원

정리=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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