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계경제] 3. 중동전쟁, 석유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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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목=영광의 탈출

원제=The Exodus(60년)

감독=오토 프레민저

주연=폴 뉴먼, 에바 마리 세인트, 랠프 리처드슨

"장군께 이 말을 전하시오. '너는 바로에게 가 내 백성을 내보내 그들이 나를 예배할 수 있도록 하라고 전하라'. 출애굽기 8장 1절입니다."

영국군 장교 출신의 유대인 과격단체 조직원 벤 캐넌(폴 뉴먼)은 미국인 간호사 키티(에바 마리 세인트)에게 성경의 한 구절을 내뱉는다.

키프로스의 유대인 감호소 책임자인 영국의 서덜랜드 장군에게 전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세가 홍해를 건넜듯 자신도 지중해를 가로지를 수 있다는 강한 암시가 담겨 있다. 키프로스에 억류돼 있던 유대인들의 배 이름이나 영화 제목 모두 출애굽기의 원어 엑소더스(Exodus)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배경인 1947년 가을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그해 11월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분할 여부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 무렵 중동은 새로운 전쟁에 휘말릴 소지를 안고 있었다.

문제는 역시 석유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석유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커졌다. 독일과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원인도 유전 장악 실패에서 찾아졌다.

41년 일본은 미국이 석유 수출을 금지시키자 진주만을 기습했고, 43년 독일은 코카서스 유전을 탈취하기 위해 스탈린그라드로 향했다.

30년대만 해도 미국은 중동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공황에 석유공급이 넘쳐 몸살을 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날 무렵 태도가 바뀌었다. 미국의 석유가 곧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43년 미국의 내무장관 해롤드 아이크스의 논문 '석유가 고갈되고 있다'이후 석유는 워싱턴의 관심사였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중동을 장악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발견했다. 미국의 최대 적국 소련이 호시탐탐 중동을 노렸기 때문이다. 아랍민족주의의 기치 아래 막 태어난 이란이나 이라크에선 공산주의 세력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을 관리해온 영국은 힘이 다했다. 전쟁을 치르며 빚더미에 올라앉아 어떤 식민지도 관리할 돈이 없었다. '여왕의 진주'라는 인도마저 내놓아야 할 처지였다. 권력의 공백 상태인 중동이 미국의 입장에선 너무나 위태롭게 보였다.

그래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아랍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고 유대인 국가 건설은 아랍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 뻔했다. 영국과 미국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민을 막는 선에서 아랍의 반발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악수였다. 유대인들의 증오가 잉태되는 가운데 아랍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양국은 소련에 이권을 빼앗기는 것만큼이나 어떤 부담을 지는 것도 싫어했고 결국 유엔에 그 악역을 떠맡겼다.

47년 11월 표결 결과는 33대 13. 유대국가 건설을 인정하는 쪽으로 결정됐다. 물론 미국의 막후 역할이 컸다. 전후 세계 지원계획인 마셜플랜의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위협하면서까지 유대 국가의 건립을 지지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직접적인 책임은 피하면서 유대인의 표를 얻고 유전도 보호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이었다.

'영광의 탈출'은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팔레스타인으로 가려는 유대인들의 이야기다. 47년 9월 실제 벌어졌던 '엑소더스호 사건'이 바탕에 깔려 있다. 배 안의 유대인들은 자폭하겠다며 며칠 동안 단식 투쟁을 한 끝에 팔레스타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화는 누가 봐도 친유대적이다. 유대인들이 아랍과 평화적 정착을 원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감독도 주연도 유대인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개봉 당시 유대인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9.11 테러는 미국의 지나친 이스라엘 편애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테러는 아랍인들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 한편에선 영국 민간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테러가 그려진다. '갈 길을 막는 자는 누구든 적'이라는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재광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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