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종교계 4대 강 논란, 세몰이 양상 곤란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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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은 종교를 믿는다. 불교·개신교·가톨릭·원불교에 이슬람교까지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이런 바탕 위에 정신적으로 배타주의를 배격(排擊)하고 상대방을 포용하는 상생의 문화를 배양하는 데 종교계의 역할은 매우 컸다. 사회적으로는 각종 현안에 대해 시대적 목소리를 뿜어내며 여론을 응집시키는 영혼의 조타수(操舵手)로서 기여했다. 그래서 종교계가 특정 사안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찬반으로 갈라져 세몰이를 하는 양상은 국민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불교·천주교·원불교·기독교 관계자들은 어제 ‘생명의 강을 위한 4대 종단 대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방식이 이 강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국민 모두를 살리는 길인지 다시 한번 냉철하게 검토해 달라”며 4대 강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같은 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기자회견을 통해 66개 회원 교단과 19개 회원단체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고질적인 물 문제 해결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4대 강 살리기 사업을 적극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하나의 사안에 종교계 내부에서 보는 시각이 정반대라면 국민은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지금 국민 대다수는 4대 강 사업을 놓고 어떤 것이 옳은지 몰라 정신적 혼돈(混沌) 상태에 있다. 생태계 문제, 보(洑) 축조와 수질 오염 상관관계, 사업의 ‘속도전’ 등 뭐가 진실인지 헛갈리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치르며 정당의 이해마저 얽혀 있어 사실상 아노미(anomie)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는 4대 강 개발은 과학의 문제이며, 국민 대토론회를 통해 지혜를 모으자고 제안한 바 있다. 국토해양부와 4대 강 사업에 반대하는 단체들도 공감해 대토론회 개최에 의견을 거의 모았다. 그렇다면 이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를 준비하며 토론회를 성사시키는 데 모두 노력해야 할 때다. 종교계도 소모적인 세몰이보다는 여기에 힘을 보태야 한다. 포용과 상생의 정신을 되살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는 게 종교계의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