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Champions] 김효일 상신브레이크 사장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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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한 우물 판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 덕에 위기 속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잘한 거죠.”

국내 자동차 브레이크 시장 점유율 1위, 상신브레이크의 김효일(66·사진) 사장의 말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적토성산(積土成山)’이란 글귀가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순자』‘권학(勸學)’편에 나오는 말로 ‘흙이 쌓여 산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 말대로 하려면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35년간 브레이크 ‘한 우물’을 파 온 상신브레이크가 그랬다. 올해로 사장을 맡은 지 꼭 10년째인 그도 ‘한 우물 파기’에 회의를 느낄 때가 있었다.

“공단 내 이웃 기업들이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쑥쑥 커지니, 경영자 모임에 나가면 조금씩 뒷자리로 밀리더군요. 그럴 땐 솔직히 한 우물 파기가 맞는 길인지 회의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인내의 끝은 달콤한 열매로 맺혔다. 한눈팔지 않고 온 덕에 재무구조는 안정되고, 기술력도 쌓을 수 있었다. 금융위기의 격랑도 큰 흔들림 없이 견뎠다. 실물경기가 위축됐던 지난해에도 매출(1557억원)은 전년보다 늘었다.

올해 그가 정한 경영목표는 ‘기술 식민지 해방’이다. 표현이 다소 거친 것은 그간의 설움이 담겨있는 탓이다.

꾸준히 개발해 온 자체 원료 제조기술만으로도 웬만한 제품은 생산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제는 브랜드 인지도와 판매 이력이다. 막상 해외 메이커에 납품하려면 그 제품이 유명 자동차에 쓰인 적이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해외 업체의 원료도 써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됐다. 김 사장은 “유명 유럽차에 우리 제품을 넣기 위해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상신브레이크가 여기까지 온 데는 한 우물 파기와 함께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밑바탕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연구개발로 한 해 매출의 4~5%를 투자해 왔으니 사실상 이익을 모두 기술확보에 들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요즘 매일 아침 사무실로 출근하기 전 먼저 들르는 곳도 연구소다. 이 회사 연구원 수는 약 100명. 계열사 직원이 모두 1000명가량이니 전체의 10%가 연구 인력인 셈이다.

“일부에선 뭐하러 연구소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두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기술력이 우리가 먹고살아 온 힘이었고 앞으로의 먹을거리도 만들어 줄 겁니다.”

『순자』에선 ‘적토성산’ 하면 ‘풍우흥언(風雨興焉)’, 즉 ‘바람과 비가 일어난다’고 했다. 상신브레이크도 위기를 넘어서며 본격적인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지난해 이후 해외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중국에 이어 올 2월 인도에 법인을 설립했고, 브라질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위기 속에서도 세계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체가 든든한 발판이다.

그는 “가격 경쟁력은 물론 품질에서도 해외 업체들에 밀리지 않아 신흥시장과 유명 자동차 메이커를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장 가동률은 95%를 넘어섰다. 김 사장은 “지난해 3월을 고비로 빠르게 상황이 나아지더니 요즘은 해외로부터 주문이 밀려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올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8% 증가, 영업이익도 9억원 적자에서 33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김 사장은 “올해 1700억원, 내년에는 2000억원으로 매출을 늘리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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