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재오 위원장의 ‘으름장 놓기’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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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공직자가 향응과 이른바 ‘2차’ 접대를 받았다면 당연히 형사처벌감이다. 성매매 알선자와 성매수자에 대해 처벌하는 성매매특별법 위반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업무와 연관성이 있거나 모종의 거래가 있다면 포괄적 뇌물죄도 성립한다. 감독 기관이 이를 알고도 단순 징계로 덮는다면 직무유기(職務遺棄)와 다름없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천안함 애도 기간 중 룸살롱에서 술 먹고 모텔로 ‘2차’를 나간 고위 공직자들이 있다”고 개탄했다. 구체적인 상호(商號)까지 거론한 뒤 “여종업원이 100여 명이나 되는 룸살롱은 모텔까지 겸하고 있어 술 먹으러 들어가면 자고 나오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애도 기간 중 골프를 치거나 일식집에 스폰서를 받아 간 사례도 있다고 했다.

이런 의혹은 현지 실사를 통해 파악됐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충격이다. 천안함 사태로 빚어진 국가적 비상시국에 공직자들이 흥청망청 놀아댔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가뜩이나 스폰서 검사 파문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이들은 국록(國祿)을 축내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엄벌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고위 공직자의 부패 혐의가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권익위는 법에 따라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위원장은 “공직사회에 경종(警鐘)을 울리기 위해 해당 공직자들이 징계받도록 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직사회의 투명성과 기강 확립 차원에서 비리가 확인됐다면 일벌백계하는 게 맞다. 형사고발할 정도의 확증도 없는 상태에서 변죽만 울렸다면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식으로 슬그머니 으름장을 놓은 뒤 시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는 자기 세력 과시나 공무원 길들이기라는 인상을 풍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