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보다 2006년보다 훨씬 더 강해진 허정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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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쫓기는 기분이었다. 지레 겁을 먹어 긴장하기도 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월 3일 열린) 코트디부아르 전을 보라. 유럽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나서 여유있게 경기를 풀어갔다. 부담 없이 경기를 즐기면서 포지션마다 역할을 잘 수행해 내니까 골도 나고 경기도 이겼다. 이 경험을 잘 활용하면 16강도 가능하다. 지금 대표팀은 역대 최강이다.”7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4월 예비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쾌한 도전’을 천명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성공으로 쌓이기 시작한 해외진출 경험은 한국축구의 자산이 됐다. 8년 전, 그리고 4년 전과 달라진 한국축구의 자신감이다.

◆늘어난 유럽파=한국은 2002 월드컵 이전까지 매번 유로포비아(유럽 공포증)에 시달렸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야 했지만 유럽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98프랑스월드컵 때만 해도 네덜란드에서 뛰던 노정윤(당시 NAC 브레다)이 유일한 유럽파였다. 2002 한·일월드컵 때도 안정환(AC 페루자·이탈리아)과 설기현(안더레흐트·벨기에)에 불과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에 오르며 비로소 두려움의 장막을 걷어낸 한국 선수들은 저마다 유럽행 특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부딪히고 깨우치며 세계벽을 충분히 깰 수 있다는 걸 점차 증명해내기 시작했다. 허정무팀에는 유럽파가 6명이나 있다. 박지성(맨유), 박주영(모나코), 이청용(볼턴), 기성용(셀틱), 김남일(톰스크), 차두리(프라이부르크) 등이다. 유럽리그를 경험한 이영표(알힐랄), 이동국(전북), 안정환(다롄), 김동진, 오범석(이상 울산)까지 포함한다면 전·현직 유럽파가 11명에 이른다.

◆경험은 소중한 자산=단지 숫자만 는 게 아니다. 4년 전 막 맨유에 입단한 초년병 박지성은 이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세 번 경험한 베테랑이 됐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같은 빅매치를 경험했다. 이청용은 K-리그에서 빅리그로 직행해 주전자리를 확보한 첫 선수가 됐다. 차두리는 유럽에서도 포지션 변경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한국축구의 영원한 레전드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도 ‘경험의 힘’에 동의한다. 차 감독은 “유럽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의 경험이 있다. 한국다운 경기를 펼쳐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전적인 자세=개최국이었던 2002년 한국은 경험과 실력보다는 열정이 앞섰다. 현 대표팀과 냉정하게 비교해볼 수 있는 2006년 월드컵팀은 지금보다 진취성이 부족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월드컵 개막 8개월을 앞두고 혼란한 대표팀을 맡아 연착륙에 성공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의 능력 덕이었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 직전 독일과의 평가전을 거부하는 등 지나치게 ‘안전운행’을 선호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허정무팀은 강팀과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다. 3월 코트디부아르전에 이어 월드컵 개막 직전 세계 최강 스페인과 맞선다. 해외파 규모도 4년 전보다 두 배로 늘었다. 코칭스태프와 베테랑 해외파의 자신감이 팀 전체로 퍼져가고 있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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