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차장이 수사 중단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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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가정보원이 1987년 '수지 金 사건'을 공안사건으로 둔갑시키고 지난해 경찰 수사를 중지시킨 데 대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서 관련자들이 사법처리될 전망이다.

87년 은폐조작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지난해 사태로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이 사법처리될 경우 국정원 조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관계자들이 업무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국정원은 검찰이 최근 金씨의 남편 윤태식(尹泰植)씨를 살인혐의로 구속했을 때 87년 은폐의 잘못을 정식으로 사과했으나 현 정부 들어 구태를 벗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사태를 왜곡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검찰 수사의 관심사항은 두차례의 은폐.왜곡 시도의 진상과 과연 이 과정에 국정원 내에서 어느 선까지 개입했느냐이다.

서울지검은 지난 13일 尹씨를 살인혐의로 기소하고 이틀 뒤 "국정원 관계자들이 지난해 경찰 수사를 중지시킨 혐의가 드러났다"고 국정원에 통보했다.

이는 검찰이 최근 尹씨에게서 "지난해 2월 경찰청 외사과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낸 데 따른 것이다. 검찰은 또 당시 수사 경찰관들을 소환조사한 끝에 경찰이 홍콩 경찰에서 수사기록을 받아 尹씨를 불러 조사한 직후 국정원 수사3과장과 직원이 찾아가 수사기록 전부를 넘기고 수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던 사실을 밝혀냈다.

국정원과 검찰 주변에서는 당시 국정원 嚴모 2차장이 경찰청 고위 간부에게 수사 중단을 요구하는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졌던 것으로 파악됐다.이는 당시 국정원장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를 종합해 볼 때 안기부는 尹씨의 귀국 기자회견 직후부터 尹씨가 수지 金 살해범이란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이 사실이 들통날까봐 그를 특별히 관리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사대상이 확대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검찰은 지난 87년 尹씨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덮어버린 것으로 드러난 당시 안기부 관계자들은 이미 범인도피죄 공소시효(3년)가 지나버려 사법처리가 불가능하지만 사실확인 차원에서 소환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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