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중국 월마트' 노조 허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중국 현지 법인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노조(공회) 설립을 허용키로 했다. 노동계의 압력으로 42년간 지켜온 무노조 전통이 무너진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24일 월마트의 중국 법인이 노조 설립을 허용키로 했다는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노동 전문가들은 "월마트의 결정에 따라 중국에 진출한 다른 다국적기업과 중국 내 사기업으로 노조 설립이 확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픽 크게보기>


◆ 백기 든 월마트=월마트 중국법인은 지난 23일 "종업원들이 노조 설립을 요청할 경우 그들의 희망을 존중하고 중국의 노조 관련 법규에 따라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월마트는 불과 2개월 전인 9월까지만 해도 "회사가 종업원과 직접 개별적으로 교섭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믿기 때문에 노조 설립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었다.

이번 발표로 월마트 중국 법인에 노조가 곧바로 들어설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무노조 원칙'을 지켜온 월마트가 노조 설립을 허용하겠다고 공식 천명한 것은 큰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월마트는 현재 중국 내 42개 점포에서 2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유통시장이 추가 개방됨에 따라 내년에 15개 점포를 추가로 개설할 계획을 세우는 등 확장 전략을 추진해 왔다. 1962년 샘 월튼이 미국 아칸소주에서 창업한 이래로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월마트에는 노조가 없었다. 월마트의 주요 경영전략 중 하나가 싼 임금과 탄력근무 등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좌파와 노동계의 입김이 강한 독일에서조차 월마트 현지 법인은 노사협의회(work councils)만 허용했다. 미국 내에서는 더욱 강경해 2000년 2월 미국 텍사스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사측이 끝내 저지했고, 지난달 캐나다 법인에서 일부 직원들이 노조 설립 신청을 했지만 회사가 법적 대응에 나섰을 정도다.

◆ 커지는 노동계의 목소리=중국의 유일한 상급 노동자 단체인 중화전국총공회(中華全國總工會)는 지난 9월 "외자기업과 민영기업이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실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사실상 준정부 조직으로 노동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달부터 월마트를 우선 조사했고 "월마트와 델.코닥.맥도널드.삼성전자 등 다국적기업이 노조 설립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고소하겠다"고 압력을 넣었었다.

중국 노동계의 목소리가 최근 커진 것은 일선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노동 관련 소송은 2만2600건으로 전년도보다 50%가 늘었다. 상반기에 30인 이상의 노동자가 참가한 중대형 분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에 따른 '성장의 과실'을 나누자는 노동계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운 것도 분규가 늘어난 주요 이유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그동안 저임금 근로자들 덕분에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아 왔으나 갈수록 저임금의 이점은 줄고 '노동 리스크(위험)'는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