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놈 입체구조의 비밀 '양성자 가속기'가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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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DNA와 인슐린 등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 포스트 지놈 시대를 여는 열쇠 중 하나다. 신약 개발이나 유전자 치료, 장기 복제 등이 훨씬 쉽고 정교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슐린의 분자 구조를 알려면 초당 ㎠에 1경(京)개의 중성자를 쏘아 줘야 한다.

그래야 인슐린 분자를 구성하는 수백만개 수소 원자의 위치를 밝혀낼 수 있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X선으로는 분자 속의 탄소.질소 원자의 위치밖에 알아 낼 수가 없었다.

또 양성자로 핵폐기물의 원자핵을 쪼개면 그 수명을 아주 짧게 할 수 있다. 이같은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양성자 가속기다.

이에 따라 미.일.유럽 등 주요 국가들은 21세기 기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규모 양성자 가속기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양성자 가속기 없이는 생명공학.나노테크.우주공학.환경공학 등의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1억달러(약 1조4천억원)를 들여 2005년 완공 목표로 1기가 전자볼트(GeV)급 양성자 가속장치인 '핵 파쇄 중성자원(SNS)'을 건설 중이다.

유럽연합(EU) 역시 약 9억3천만달러(약1조2천억원)를 들여 2008년 완공 목표로 1.3기가 전자볼트급을,일본은 2006년 완공목표로 18억달러(약 2조3천억원)를 들여 3기가 전자볼트급을 건설 중이다. 중국.인도도 경쟁 대열에 뛰어 들었다. 우리나라는 국책 프로젝트로 검토하는 단계다.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최병호 박사는 "선진국의 양성자 가속기 건설 붐은 1990년대의 중성자 공학 시대를 거쳐 양성자 공학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예고한다"고 말했다.

양성자는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핵을 쪼개면 중성자와 함께 나오는 입자.양성자는 원자의 10만분의 1정도의 크기로 아주 작지만 이를 초속 수백㎞~빛의 속도(초속 30만㎞)로 가속하기에 따라 그 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초고속 양성자로 물질을 때리면 원자의 구조 자체가 변하고 이는 물질의 성질까지도 변하게 한다.이를 이용하면 핵폐기물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보통 핵연료 폐기물의 경우 그냥 놔두면 수만년 동안 방사능이 나오는데 양성자 가속기로 가공하면 30년 만에 일반 쓰레기와 똑같이 취급할 수 있다. 핵폐기물의 처리 부담을 후손에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

원자 낱개를 조작하는 나노테크에도 양성자 가속기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성자나 중성자가 원자보다 아주 작기 때문에 원자의 위치와 운동 상태를 알아내는 탐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원자용 고성능 탐침 개발은 과학계의 큰 과제 중 하나다.

양성자 가속기에서 소량의 양성자 빔을 꺼내 암 덩어리를 죽이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의 한 병원은 양성자로 약 5천명의 암환자를 치료했다. 첨단 암진단 장치인 양전자 단층촬영장치(PET)용 고성능 방사성 동위원소도 생산할 수 있다.

이런 점이 기존 방사광 가속기와 다르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가속해 빛을 만들어 물질의 구조를 파악하거나 초정밀 가공 등에 사용한다.

미국이나 독일 등은 방사광 가속기와 양성자 가속기의 장점을 동시에 활용하기 위해 두 종류를 함께 설치하는 추세다.

21세기의 첨단 기술이 꽃 피는데 양성자 가속기의 역할은 절대적일 것으로 보인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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