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국과 일본의 과거사 왜곡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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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1일 "일본 지도자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중.일 간 정치적 장애"라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력히 비판했다. 후진타오 주석의 발언은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왜곡과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감정적 앙금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현안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특히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라는 동북아 지역 문제가 지구의 정반대편에 있는 남미의 칠레에서, 더군다나 세계가 보다 더 큰 틀의 협력과 번영의 논의를 진행하는 자리에서까지 거론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일본 군국주의의 침탈과 대량학살을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이에 소극적이며 오히려 종군위안부 문제나 난징(南京)대학살 문제 등을 인정치 않고 있다. 최근 들어선 극우적 정치인들의 선동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일본 총리가 전쟁을 일으킨 1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매년 참배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본의 아니게 전쟁에 나갔던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기 위해 참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누차 지적했듯 진정으로 그러한 뜻을 갖고 있다면 일본은 이들 1급 전범들과 전쟁희생자들의 위패를 분사해 논란의 소지가 없는 별도의 추모시설을 만드는 게 마땅하다.

동북아시아의 역동성이 과거사에 발목을 잡히는 것은 모두의 불행이다. 일본의 번영된 미래와 아시아와의 공존을 희망한다면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의 우익 정치지도자들은 잘못된 과거사 인식의 족쇄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국도 일본의 역사왜곡에만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스스로 대국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동북공정에서 보듯 주변국과 마찰을 일으키는 역사왜곡의 유혹을 떨쳐야 할 것이다. 역사 왜곡은 마약처럼 일시적으로 짜릿한 흥분을 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론 동북아 공동번영의 기운을 갉아먹는 일이다. 아시아의 지도자들이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