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는 중국 … MB엔 “천안함 평가” 김정일엔 방중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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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구체적 행보를 보면 이 같은 중국의 태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달 30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며 “한국 정부의 객관적인 사고 조사를 평가한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정상회담 이후 불과 사흘 만에 김 위원장의 방중을 허용, 그를 끌어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후 주석과 김 위원장 간의 북·중 정상회담은 5일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일주일 사이에 남북한 지도자를 모두 중국 땅에서 접견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 같은 모순은 중국과 북한 간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됐다. 중국에 북한은 ‘계륵’ 같은 존재의 측면이 강하다. 중국에 대한 안보 위협을 줄여주는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존재는 여전히 중요하고, 이 때문에 북한의 붕괴가 이로울 게 없다는 게 중국의 기본 인식인 것이다.

그러나 실리주의에 기초한 이같은 전략 때문에 남북한이 갈등 상황에 빠질 때마다 중국이 딜레마에 처하는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천안함 사건의 원인 규명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이 김 위원장의 방중을 수락함에 따라 실리 앞에 어정쩡한 중국의 외교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며 “남북한을 상대로 균형자 역할을 해온 중국의 입지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후 주석이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관련, 이 대통령에게 어떤 언질도 주지 않은 것은 중국 측 실책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간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책임지는 대국”이라고 누차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번 천안함 사건처럼 자국의 국익과 관련된 민감한 사건에 대해선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경우가 적잖았다. 이에 따라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중국이 공정한 중재자 역할 대신 ‘북한 편들기’로 돌아설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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