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 재계 출자총액 규제완화 엇갈린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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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공정거래위원회가 30대 그룹에 대해 순자산의 25%를 초과한 출자분은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인 규제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공정위는 이를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사실상 폐지' 라고 강조했다. 총액한도를 넘어 출자하더라도 과징금이나 형사고발 등 강제적인 해소조치가 없기 때문에 총액 제한에 구애되지 않고 출자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초과출자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여전히 기업 출자를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에 대해선 재정경제부 등 다른 경제부처도 규제 대상을 대폭 줄이자는 입장이어서 공정위가 제시한 안을 두고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재계 애로사항 모두 해결?" =의결권 제한과 관련, 공정위는 "다른 회사 주식보유 자체는 제한하지 않는다" 면서 "재계가 주장하는 현행 제도의 세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세가지 문제란 ▶신규투자 곤란▶주식매각을 통한 한도초과 출자 해소 때 대규모 매각손실▶막대한 물량의 주식매각으로 증시에 미칠 악영향 등이다.

공정위는 출자총액한도를 초과한 30대 그룹의 출자분을 13조1천억원으로 파악했다. 이 중 최대 3조5천억원 정도가 증시를 통해 매각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했다. 우선 의결권 제한은 '1주1표' 라는 주식회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이 중요한 투자문제를 결정할 때 주총을 열어야 하는데, 어떤 출자는 의결권을 인정하고 어떤 것은 제한하는 것을 주주들이 받아들이겠느냐" 고 반문했다.

재계는 이 방안이 기업과 투자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왔다고 평가절하했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자본주의에서 투자만 하고 의결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고 주장했다.

정부 안에서도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진념 부총리는 "의결권 제한방안은 상장기업 주주와 자본금이 마이너스인 기업, 어떤 출자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지를 정하느냐는 문제 점이 있다" 고 말했다.

◇ "자산규모는 3조원 이상" =이남기 공정위원장은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바꾸면 자산규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며 "의결권 제한 대상 기업집단은 자산규모 3조원 이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지난 8월 1일 기준 자산이 3조원을 초과하는 그룹은 삼성(69조9천억원)에서 신세계(3조2천억원)에 이르기까지 26개다.

이는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그룹을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하자는 재경부의 입장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10조원 이상 그룹은 두산(11조2천억원)을 비롯해 12개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재계는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경제력 집중억제 규제를 받는 대상을 자산규모 3조원 이상으로 하는 것은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를 계속하는 일종의 편법" 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규모가 큰 기업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반기업적 논리에 입각한 것으로 글로벌 경제 환경에 맞지 않는다" 고 주장했다.

김영욱 전문위원.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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