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몇달마다 바뀌는 건교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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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건교부장관 자리가 안정남(安正男)장관의 낙마(落馬)로 또 바뀐다.

安장관의 경질은 부동산 투기라는 고위 공직자 개인 차원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현 정부 인사의 난맥상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소홀한 자질 검증에 정치적 인선으로 논란이 많았던 현 정권의 인사정책 부재를 또 한번 되풀이해 보여준 것이다.

건교부는 새로 임명될 장관을 포함하면 DJ정권 출범 이후 벌써 일곱번째, 올 들어 네번째 장관이 바뀌는 셈이다.

이정무(李廷武).오장섭(吳長燮).김용채(金鎔采)전 장관은 공동여당 시절 자민련 배려로 임명된 정치인 출신이며 이건춘(李建春).안정남 전 장관은 국세청장 출신에서 건교부로 옮겨왔다.

건설교통 행정을 책임져야 할 장관직에 전문성을 뒤로 하고 정치적 안배나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우선해 자리를 맡긴 것이다.

이러고도 건설교통 행정의 일관성을 기대했다면 그 자체가 잘못이다. 몇달에 한번씩 장관을 바꿔대는 일이 이 세상 어느 민주국가에 있느냐고 묻는 국민에게 정부는 무어라고 답변할지 궁금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대통령중심제 하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장관직을 계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유럽의 경우 장관의 재임기간은 평균 4~5년, 미국은 35개월이나 우리나라 장관은 현 정권의 경우 1년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통 외부에서 온 장관이 업무를 파악해 소신을 갖고 정책방향을 잡으려면 적어도 6개월은 걸리게 마련이다.

최소한 10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할 부처가 잦은 장관 교체로 몇 달 앞도 전망할 수 없다면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없다.

건교부 앞에는 지금 숱한 현안이 쌓여 있다. 우선 항공안전 2등급 판정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더구나 미국의 테러사태 이후 전세계 항공업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보험료에 승객감소 등 회오리에 휩싸여 있고 그 위기가 국내업계에도 닥치고 있다.

또 주택정책은 어떤가. 주택 부족도 그렇지만 지난해 이후 계속돼온 심각한 전세난에서 보았듯이 생활패턴 변화에 유연한 대처 기능을 잃어온 지 오래다. 건설경기 활성화에만 매달려 제대로 된 정책을 펴내지 못하고 있다.

현 정권의 공약사항이던 그린벨트 해제도 난개발의 우려가 그치지 않고 있다. 부처 차원의 사기도 문제여서 건교부 직원들은 장관이 바뀌어 또 업무보고를 해야 하나 한숨을 쉬고 있다고 한다.

국토의 친환경적 균형개발은 물론 수자원 부족에 이르기까지 새로 등장할 건교부장관은 21세기 국가발전 전략의 주요 축으로서 깊이 있는 건설정책의 모색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단명 장관으로 정책수행에 부작용만 계속 쌓이고 있다. 행정의 일관성은 물론 비전있는 정책입안과 집행도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잦은 장관교체야말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는 큰 실책임을 이번 건교부장관 경질에서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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