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아프간전쟁의 첫 희생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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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임박했다. 탈레반 정권은 오사마 빈 라덴에게 자진 출국을 권하는 형식으로 타협하려 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차제에 빈 라덴과 함께 탈레반 정권까지 무너뜨릴 계획인 것 같다. 현재 진행 중인 군사력 배치가 완료되면 미국은 항공모함 4척을 비롯, 구축함.순양함.잠수함.조기경보기 그리고 최대 3백대에 달하는 항공기로 막강한 전투력을 갖출 것이다. 공격은 전투 준비가 완료되는 이달 말 아니면 다음달 초 시작될 전망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공습과 특공작전의 혼합작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아라비아해 해상에서 발사하는 크루즈 미사일과 B2.B52 폭격기로 목표물을 파괴하면서 특수부대를 전격 투입해 빈 라덴 일당을 체포.섬멸하는 것이다.

이같은 계획이 좌절되면 지상군을 투입한다. 지상군이 투입되면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한다. 걸프전 때처럼 명확한 목표를 세워 놓고 압도적 군사력을 투입해 신속한 승리를 거두는 '파월 독트린' 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계획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걸프전에선 공습으로 이라크의 인프라를 철저히 파괴한 다음 지상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한 아프가니스탄엔 공격할 가치가 있는 군사목표가 별로 없다.

그나마 최근 사태로 대부분 소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공작전을 펴는데도 빈 라덴의 소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지상군을 투입하자면 10만~20만명 병력이 필요한데, 도로망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보급이 큰 문제다. 20만명을 투입할 경우 하루 1만6천t의 보급품이 필요하다.

더 어려운 것은 자연과의 싸움이다. 국토의 4분의3이 해발 4천~7천m의 험준한 산악지대라 미사일 공격이나 폭격의 효과가 크지 않다. 현지 지형에 익숙한 게릴라들은 이를 이용해 침략군을 괴롭힐 것이다.

풍부한 전투 경험에다 죽음을 두려워 않는 그들은 게릴라 부대로선 세계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후 조건도 불리하다. 여름엔 섭씨 40도가 넘는 혹서, 겨울엔 영하 20도 내외의 혹한이다. 겨울이 빨라 10월이면 눈이 내린다.

역사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침략자들의 무덤' 이었다. 알렉산더대왕과 칭기즈칸, 영국과 소련도 아프가니스탄을 장기간 지배하지 못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은 10년 후 철수할 때까지 1만5천명이 전사하고 5만명이 부상했다.

아프간 사람들은 1백만명이 희생됐다. 그들은 '죽은 가족 숫자 만큼 소련군 병사를 죽이기 위해' 게릴라에 가담했다.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으로 지뢰 1천만개를 남기고 떠났다.

유엔은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5분의1인 5백만명이 국제기구의 구호식량에 의존해 왔으나 이번 사태로 국경이 폐쇄되면서 식량 공급이 중단됐으며, 현지의 비축 식량은 2주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발표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무한 정의 작전' 의 첫번째 희생자는 아프간 주민들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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