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민주당에 질려 부렀어”“근디 투표장에만 가불면, 허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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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 11면

1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민주당 광주시장 경선이 열렸다. 시민공천배심원제와 당원 전수여론조사를 각각 50%씩 반영한 경선에서 강운태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광주=연합뉴스]

“난 투표 안 할거요.”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이모(49)씨는 선거 얘기에 손사래를 쳤다.
“사람들도 먹고살기 바빠 선거해도 예전 같지 않어요. 차라리 선거가 없는 것이 나아. 선거철만 되면 모임 같은 걸 일절 못 허게 항께 경기가 더 죽어부러.”

시민배심원제 갈등 겪는 광주

6·2 지방선거가 가까워오면서 공천 막바지에 달한 민주당은 후끈 달아올랐지만 광주 민심은 냉랭했다. 22일 거리에서 만난 광주시민들은 “민주당에 질러부렀다”거나 “민주당이 저러고 있을 때가 아닌디…”라는 반응이 주류였다. ‘호남의 정치 1번지’라는 광주의 민심이 예전 같지 않은 데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시민공천배심원제 후유증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시민공천배심원제는 민주당이 이번에 새롭게 도입한 공천 제도다. 공천결정권을 전국 단위의 시민단체나 전문가 등 당 밖의 ‘배심원’에게 주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경선제에서 조직 동원력이 승패를 가르는 단점을 없애고 시민 참여 확대를 위해 찾아낸 절충안”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출발부터 잡음이 잇따랐다.

광주의 한 당직자는 “주민 스스로 뽑는다는 지방자치제 근본 취지에 어긋난다”며 “전문가라 하더라도 외지인이 현지 사정을 얼마나 잘 알겠느냐”고 비판했다. 광주시 등 13곳에만 이 제도를 적용한 것도 문제가 됐다. 13곳 대부분의 현역 단체장은 옛 민주계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그래서 ‘물갈이용’이라는 반발을 불렀다. 해당 인사들은 대부분 현재 중앙당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출신의 친노무현 세력이 옛 민주당계를 배제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런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게 광주시장 경선이었다. 시민배심원제 도입 지역을 선정할 당시부터 “특정 지역에 대한 인위적인 물갈이가 아니냐고 의심 받는 제도를 논리적 이유 없이 적용하려고 하는 것”(박주선 최고위원)이란 반발에 부닥쳤다. 진통 끝에 광주시장 경선은 시민공천배심원제 50%, 당원 전수여론조사 50%로 타협하는 선에서 룰이 결정됐다. 경선 결과 옛 민주계로 분류되는 강운태 의원이 후보가 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이용섭 의원은 배심원제 투표에서 이겼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져 2위가 됐다. 0.45%포인트 차이였다. 이 의원 측은 반발했다. “선거운동 기간 중 불법 여론조사가 진행됐고 당락에 영향을 미쳤다”며 중앙당에 재심을 신청했다. 당원 여론조사가 진행되는 시간에 강 의원 측이 사설기관을 동원해 별도의 사설 여론조사를 함으로써 이 의원을 지지하는 당원들의 여론조사 응답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다음주 중 재심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시민공천배심원제의 후유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역인 봉일봉 광주 남구청장은 이미 “시민배심원제는 민심을 왜곡할 수 있다”고 반발, 경선에 불참한 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노관규 순천시장, 이성웅 광양시장, 황주홍 강진군수 등이 줄줄이 당의 공천 방식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시민배심원제가 도입된 무안군수 경선은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조직 동원 의혹이 일면서 경선 자체가 무기한 연기됐다.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호남에서 민주당 출신의 현역 단체장들이 잇따라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새로운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는 지역 민심도 혼란스럽다.

광주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김태환(56)씨는 “강운태씨는 민주계, 이용섭씨는 열린우리곈디… 지금 체제로는 맘에 안 들어. 싸움을 허고 난리네, 당에서도 알고 있겄죠잉. 한 군데로 뭉치면 좋은디…김대중(DJ) 선생 계실 땐 노란 물결이었잖어요. 긍께 그런 거시기(민주당은 무조건 될 거라는 생각)가 남아 있제”라고 말했다. 광천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설금복(65)씨는 민주당의 내홍과 리더 부재를 문제로 들었다. “구심점이 없응게 그래. 전라도는 DJ만 믿고 죽어라 하고 있었는데, 후계자를 못 키웠어. 긍께 선거도 왜 그라냐. 한꺼번에 당을 밀고 그래야지 흠집을 내고 말이요.”

무소속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가 선전할 것으로 전망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양동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정성문(40)씨는 “이렇게 싸우는데 누가 찍어요”라며 “(광주)시장은 정용화(한나라당) 후보 찍을 거야. 그람 돈이라도 가져와서 챙겨줄 거 아녀. 구청장은 황일봉(무소속)후보 찍을 거요. 잘 하는 디 왜 바꿔. (민주)당 필요 없지라. 먹여 살려주기를 해, 밥 한 그릇을 사주요.”

민주당 쪽에선 현 상황이 공천 때마다 겪는 진통일 뿐 특별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공천=당선’으로 통하기 때문에 경선이 치열하고 잡음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광주시당의 한 당직자는 “ 기존 인사를 바꿀 땐 예전에도 (공천 과정이) 원만하지 않았다”며 “광주·호남 정치가 옛 민주계, 옛 열린우리계, 이렇게 단순한 계보로 정리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택시 안. 광주 토박이라는 택시기사 조원희(48)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근디 가 봐야 알죠잉. 선거하기 전엔 다 근다고 해요. 여기(호남)서도 한나라당 되고 저기(영남)서도 민주당 되고 허면 되지 않냐. 근데 선거만 했다 하면… 나도 딴 사람 찍어야지 하는디 실상 투표장에만 가뿔면, 허허허허…. (민주당이) 당선은 되겠지만 표는 많이 빠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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