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문학 포르노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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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2공화국 말기 어느 소심했던 정치가의 말투를 빌려보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 드디어 온 것은 출판계의 공공연한 비밀인 '문학 시장의 죽음' 그 이후 국면인 현재 문학관련 출판사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문학 포르노 쇼' 의 게임에 대한 고발을 말한다.

지난 1~2개월내 일간지에 실린 문학서 광고의 카피를 한번 모아보자. 습관적으로 넘겼던 것을 한눈에 놓고보니 인용조차 역겹다.

"독자를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섹스와 죽음의 격렬한 서사"

"십몇㎝만 들어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

"악마적 묘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몽환적 섹스"

"읽는 이가 채 소화할 수 없을 정도의 도착적 사랑의 묘사" ….

이 참담한 현장을 고발한 것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의 글 '한국출판의 대붕괴는 시작됐다' (송인소식 63호)이다.

그는 형편없이 줄어든 문학서적 시장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눈먼 독자들을 부르는 호객(呼客)행위라고 규정한다.

나는 이렇게 본다. '문학 포르노 마케팅' 이란 연극계에서 정통극이 죽어 슬럼화한 무대예술 동네에서 나타난 벗기기 연극과 동일한 구조다.

영상매체에 밀리고, 좋은 작가가 나오지 않는 위기국면에서 출판사들은 문학서를 섹스의 미학으로 포장해 팔고 있고, 이를 위해 억지 스타(주로 여성작가 몇명에 불과하다)를 띄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장기적으론 문학장르에 미련을 갖고있던 독자마저 내쫓는 것이 벗기기 문학인데, 상황은 연극판 보다 우려할 만하다.

이름없는 극단이 벌이는 뒷골목 연극과 달리 문학판은 메이저가 가세한 마케팅이다.

C사, M사까지 스타 빼앗아오기 경쟁을 벌이고, 독자들 헷갈리기 좋게 문학계간지들은 이들 작품에 대한 주례사 비평을 찍어낸다.

출판사, 문예지에 평론가들이 가세한 이 포르노 마케팅에 대한 경고음은 최근 평론집 『영혼의 역사』(새움)를 낸 김정란의 입에서도 나왔다.

"문학판에서도 대중가수들처럼 스타시스템이 도입됐다. 몇몇 작가들에게 파이를 몰아주고, 그 덕에 출판사도 수입을 올리는 관행이 90년대 이래 자리를 잡았다. 그 결과 문학은 존경을 잃어버렸고, 독자들은 문학을 떠나버렸다. " (21쪽)

김정란은 문학이 경쟁력없는 문화상품이 됐다고 지적하지만, 나는 현재의 국면을 '자살게임' 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반 독자들에게 문학은 이제 일상의 화제 조차 되지 않는 위기상황인데, 출판사들이 띄운 억지스타들의 책을 살펴보면 '으악' 소리가 나올 판이다.

서사(敍事)뼈대의 미비, 조악한 수준의 문장이 그렇고, 단골 레퍼토리인 불륜 타령이 철지난 감상(感傷)의 푸념 형태로 거듭된다. 세상변화에 따르지 못하니 리얼리티의 부재는 당연하다. 역시 기획능력 부재의 출판사들의 구멍가게 마인드가 문제다.

이통에 이른바 70년대 작가들의 30년 가까운 독재도 어뚱한 어부지리인 셈이다. 단 시장 자체가 줄고, 문학의 영향력이 줄었으니 예전만한 영광과는 거리가 있다.

또 있다. 80년대 이후 배출된 구효서.이승우.이창동 등은 활동무대조차 잃거나 다른 무대로 뛰어들었다. 일부 양식있는 평론가들의 절필도 기억해둘만 하다.

평론가 이남호가 앞으로 평론활동을 하지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비평할 만한 텍스트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 문학의 회생은 어떻게 가능할까? 기회가 나는대로 재론해보자.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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