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정치인의 마케팅 마인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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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장에 가면 '음료수 반입을 금합니다' 는 엄숙한 문구의 팻말에 주눅이 들었다.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산 음료수를 서둘러 마신 뒤 빈손으로 다소곳이 들어가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았다.

*** 입소문으로 빛보는 SM5

그런데 요즘 영화관은 다르다. 여러 편의 영화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에 가면 눈치 안보며 안심하고 음료수를 마실 수 있다. 자리마다 음료수 컵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한 손엔 팝콘을, 다른 한 손엔 콜라를 들고 쩔쩔매지 않아도 된다. 서울 코엑스의 메가박스와 테크노마트의 CGV 등 쾌적한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20대 중심의 영화 관람층을 30~50대로 확대시키고 한국 영화의 중흥에 한몫했다.

르노삼성차가 만든 SM5 택시를 타게 되면 오른쪽 앞뒷문의 고리를 자세히 보자. 점자(點字)표시가 돼 있다. 이 곳을 당기거나 눌러야 문이 열리고 창문을 여닫을 수 있다는 뜻이다. 택시 이용 승객, 그 작은 일부인 시각 장애인을 위한 세심한 배려다. 장애인이 구입하는 승용차에도 이 점자 표시가 있다.

자발적인 리콜에 잔고장이 적다는 SM5의 소문이 택시 기사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올 1, 2월만 해도 3천대 수준이던 판매량이 3월부터 5천대로 올라섰고, 6월부터 7천대를 넘어섰다. SM5는 중형차 판매 1위인 뉴EF쏘나타(현대자동차)를 추격하던 옵티마(기아자동차)를 밀어내고 2위 자리를 되찾았다. 이른바 '구전(口傳)마케팅' 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시장(마켓)은 오늘도 변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이를 따라 잡아야 고객을 모으고 상품을 팔 수 있다. 그래서 기업과 경영주들은 마케팅에 신경을 쓴다.

마케팅은 상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만 하는 게 아니다.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영화관은 더 많은 관람객을, 교회는 더 많은 신도를 끌기 위해 경쟁한다. 정치인은 더 많은 표를, 의사는 더 많은 환자를, 예술가는 명망을 얻으려 한다. 결국 고객(상대방)에게서 관심과 흥미, 좋은 입소문, 사고 싶은 욕망을 이끌어 내야 마케팅이 제대로 이뤄진다.

마켓이란 단순한 시장(지역)이 아닌 고객(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성공적인 마케팅이 가능하다.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서 머문다.

고객의 기대를 초월하면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 오늘날 고객은 최고의 품질과 부대 서비스.편리함.맞춤 상품.애프터서비스를 원하되 이를 싼 가격으로 제공받기를 원하는 등 까다로워졌다.

따라서 이제 마케팅은 고객 만족이나 고객 감동을 넘어 '고객 사랑' 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단순히 이해하는 데서 머물지 말고 고객 입장에 서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정치인과 공직자의 고객은 국민이다. 정치인은 국민의 마음, 민심을 제대로 읽고 움직여야 표를 모아 마케팅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상임위원회에서 여태 올해 추경예산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내년 예산안을 심의해야 하는 가을 정기국회가 당장 다음달로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말이다. 국회의원들은 입으론 민생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고리채(高利債)로 신음하는 서민층을 보호하기 위한 사채(私債)업의 등록과 이자 상한선을 담은 금융이용자보호법을 표류시키고 있다.

*** 민심 읽기 제대로 했으면

당리당략에 얽매여 여야가 막말로 서로를 헐뜯더니만 이제는 여당과 청와대간 팀워크가 삐걱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지쳐 있다. 차라리 일부에 대해선 리콜하고 싶은 심정마저 들 정도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부터 고객인 국민을 사랑하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케팅 마인드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국가 경쟁력도 나오고 시장이 안정되며 경제도 살릴 수 있다.

양재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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