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8월]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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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형식에 대한 사랑 없이는 좋은 시조를 쓸 수 없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3장과 4음보 구조(습작 때는 3434/3434/3543에 바탕한 4음보를 내면화하는 단련이 중요합니다)를 존중하며 단어 하나를 놓고 고민할 때, 형식미를 갖춘 시조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달 장원 '라면을 끓이며' 는 생활 속의 섬세한 관찰과 성찰이 돋보입니다. 라면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소재의 형상화를 통해, '소나기, 붉게 넘친 8월이 서서히 식고 있다' 고 삶을 돌아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다른 2편도 언어의 절제만 더 따른다면 좋은 시조가 되겠습니다.

차상 '바다에서' 는 시조 형식의 맛을 살린 깔끔한 작품입니다. 얼핏 평이한 듯하지만, 적절한 응축과 그 속에 '바다만 홀로 깨어서 기다림에 울고 있다' 는 표현 등이 철 지난 바다와 파도의 여운을 잘 보여줍니다.

차하 '귀가 길' 은 고등학생(동덕여고 1) 작품인데, 시를 건져 올리는 안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귀가 길의 어둠과 바둑돌의 흑백 대비, 그 속에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겹쳐 놓으며 시상을 아우르는 게 습작을 많이 한 솜씨입니다.

응모작 중에 고등학생 작품이 상당수 있어 퍽 고무적입니다. 박종수(경복고), 양지숙(보문여고), 이용재(보성고), 정의진(상무고), 서다연(고창여고) 등 학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앞으로 보다 많은 이들이 시조를 쓰고 즐기게 되기를, 그래서 시적 감수성이나 상상력이 사회 전반에 스미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강조했듯이, 시조는 정형시입니다. 이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창작에 임해야만 형식의 맛을 우려낼 수 있습니다. 이는 학생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응모자에게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맞는, 독창적이고 참신한 시조를 기대합니다.

<심사위원 : 유재영.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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