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난맥, 쇄신책 나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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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정이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항공안전 2등급 판정, 8.15 방북단의 일탈행동 등 잇따른 정책 부재.혼선.표류 현상은 정부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 건지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정부가 흔들리면 집권 여당쪽에서라도 든든한 받침목이 돼 줘야 하나 민주당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대통령이 어렵게 제의한 여야 영수회담이 여당 최고위원의 야당 총재 욕설로 무산될 위기에 있다. 그걸 봉합하기 위한다며 보여준 안동선 위원의 사퇴.번복 소동은 당정 혼선의 극치다. 집권당으로서 정국운영의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항공안전 2등급 판정은 국내 항공사의 수천억원대 손실뿐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최대의 국가신인도 추락을 몰고온 치명적 사안이다.

여기에 국민에게 더 큰 허탈감을 안겨주는 것은 지난해부터 수차례 항공안전 문제에 대한 경고가 제기됐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적극적 대책마련을 하지 못한 정부의 안이한 대처 태도다.

지난해 6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개선 권고와 지난 5월 FAA의 2등급 예비판정 때부터라도 야무지게 대처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데도 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공직자들의 임기 말 복지부동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따져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건설교통부의 안이한 대처는 장관의 전문성 결여도 큰 몫을 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누차 지적된 나눠먹기 인선의 문제점이 이번에도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방북단의 일탈행동은 또 다른 측면에서 정부의 냉철한 자세를 요구한다. 정부는 당초 방북 승인을 막다가 하루 전 갑자기 허용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너무 매달리다보니 뻔한 문제점을 간과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낙관적 대북정책이 우리 사회 일각에 "연방제를 불온시할 게 아니다" 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정부는 빨리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그동안 미뤄왔던 국정의 일대 쇄신을 하루 빨리 단행해 흐트러진 분위기를 바로잡고 남은 임기를 차질 없이 이끌기 위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항공대책과 대북정책의 무능과 혼선을 빚은 관련 장관의 문책 인사를 포함, 당정의 인사 쇄신을 서둘고 여야 대치.혼란정국을 수습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DJP공조에 대한 득실도 신중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책과 이념이 다른 두 정당의 연립은 정부 개혁을 뒤뚱거리게 만들고, 정치를 정책경쟁이 아닌 '삼국지' 식 인물경쟁으로 흐르게 한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또 지금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여당 총재 겸직 문제도 재고할 때다. 정권 재창출 문제는 야당의 의심 속에 항상 정쟁의 한복판에 자리잡아 왔다. 그걸 불식하는 길이야말로 난국 타개를 위한 여야 상생정치를 이끌어 내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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