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식 연세대 연구처장 “연구비로 특허 보상 다 했다는 논리는 곤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기업에서 연구비를 받는 과제는 특허 소유권 협상이 몹시 까다로워요. 대학과 기업이 특허를 공동 소유하는 것으로 간신히 합의해 계약서를 꾸며도 대학 입장에서 빈 껍데기 특허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연세대 홍대식(49·전기전자공학과 교수·사진) 연구처장의 말이다. 기업과 대학이 특허를 공유한다고 계약서에 명기해도 대학은 명의만 갖고 있는 것이라 현실적으로 그 특허권을 마음대로 행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글로벌 지적재산권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세대는 특허와 연구과제 계약 담당자가 8명으로 다른 대학에 비해 관련 조직이 잘 갖춰진 편이다. 홍 처장은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감안해 앞으로 담당 인력을 20명 선으로 늘릴 계획이다. 홍 처장이 기자와 만나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했다.

기업과 관련된 과제를 해도 연구 결과물인 특허의 수익이 대학에 잘 떨어지지 않는다. 연구비를 댔기 때문에 특허 등 성과물을 가급적 많이 가져가는 것을 기업은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재주는 연구자들이 부리고, 과실은 기업이 챙겨간다”는 푸념을 교수들이 많이 한다.

연구비를 받는 것이 교수나 연구원 입장에서 수입 아니냐고 기업은 강변한다. 그래서 특허료가 연구비에 포함돼 있으니 별도로 특허료를 주지 않겠다는 경우가 적잖다. 하지만 부당한 논리다. 기업이 제공하는 연구비는 대학 실험실 사용료 명목으로, 또 연구자들의 인건비·재료비 등으로 대부분 다 나간다. 연구비를 연구자들의 특허에 대한 보상이라고 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어떤 업체는 대표이사 직인까지 찍은 계약서를 일방적으로 작성한 뒤 e-메일로 ‘pdf’ 파일로 보내 대학 측 서명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한다. 모양새도 좋지 않을뿐더러 ‘pdf’ 파일을 보내는 건 내용을 아예 고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기업은 정부에서 받은 연구비를 나눠주면서 마치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것인 체하면서 고압적으로 나온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대기업은 자금력을 배경으로 이미 과학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당장 특허를 쓸 데도 없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제3자에게 팔지도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무리한 요구가 많은 상대 역시 이런 부류다.

앞으로 대학 보유 특허를 무단 사용하는 사례를 집중 조사해 볼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다른 대학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특허권을 제대로 대접하는 것이 곧 연구자를 대접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자를 홀대하면서 과학입국을 되뇌는 건 어불성설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