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교류기여금' 폐지 법안 국회 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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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UCLA대학 한국학 전공 박사과정 짐 프레다는 최근 학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간 큰 힘이 됐던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의 지원을 더이상 기대할 수 없으리란 전망 때문이다.

외국의 한국학 전공자들이 국제교류재단의 지원 감축에 긴장하고 있다. 지원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하는 것은 재단의 재원이었던 '국제교류기여금' 을 폐지하자는 안건이 국회에 상정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교류기여금' 이란 1992년 만들어진 준조세. 신규 여권을 발급할 때마다 1만5천원의 기여금을 부과해 지금까지 매년 2백여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왔다. 이 돈으로 외국대학에 한국학 교수 자리를 마련하고, 한국학 연구 석.박사과정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어 왔다.

약 10년에 걸친 꾸준한 지원 결과, 외국대학에서 한국학 연구가 상당한 양적 성장세를 보여왔다. 전세계적으로 95년 46석에 불과했던 한국학 전공교수 자리가 지난해엔 1백31석으로 늘었고, 고작 9곳이었던 한국학 연구센터도 31곳으로 늘어났다. 미국에서만도 93년 2백80여명이던 한국학 연구자가 지난해 6백19명으로 크게 늘었다.

성과가 가시화할 시기에 갑자기 기여금제가 폐지될 운명에 처한 것은 정부의 '준조세 축소' 방침에 따른 것.

정부는 연초 기여금제 등 일부 준조세를 폐지키로 하고 관련법안을 국회에 넘겨 올 가을 열릴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전망이다. 물론 정부는 재단 적립금이 일정 규모에 이를 때까지 국고보조를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여금이라는 안정적 재원에 비해 정부 예산지원은 양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어 그만큼 불안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 스탠퍼드대 신기욱 (정치사회학)교수는 "정부 예산에 의존할 경우 지속성과 안정성에 바탕을 둬야 할 연구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한국 정부의 로비성 자금으로 오해를 받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70년대에 제임스 팔레(워싱턴대).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등 미국의 대표적인 한국 학자들이 '정부 예산의 직접적 지원을 받지 않겠다' 는 정치적 이유로 국내 여러 재단의 지원을 거부한 적이 있다. 1995년과 98년에도 월 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의 유력 일간지가 헤리티지 재단에 대한 국내 재단의 지원을 '로비성 자금' 이라며 의혹을 제기해 지원사업이 무산됐었다.

우리나라보다 10배 이상 많은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경우 이런 의혹을 피하기 위해 아예 외국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재단을 만들어 사업을 결정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의 기여금제 폐지로 중국학과 일본학에 비해 겨우 걸음마 단계에 들어선 미국내 한국학 연구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UCLA의 한국학 연구소장 존 덩컨 (한국사)교수는 "한국학 연구 지원사업은 미국과 한국간 인식의 차이를 좁힌다는 거시적인 국익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며 "오늘의 일본학과 중국학이 몇십년에 걸친 투자의 결과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한국학 연구자층을 보호하는 안정적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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