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미 · 일 물가 반영한 실질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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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국의 금리는 늘 일본보다 높다는 '상식' 이 곧 깨질지도 모른다.

0%에 가까운 일본의 금리가 미국보다 높아진다는 것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를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1년 전만 해도 2.19%포인트에 달하던 양국의 실질금리 격차는 이달 들어 0.28%포인트 수준으로 좁혀졌다.

게다가 이달 중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로 금리를 내릴 것이 확실시돼 이 차이는 더 좁혀지거나 일본 금리가 오히려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 일본 실질금리 왜 높아지나=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올들어 잇따라 금리를 내린 데다 일본은 물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목금리만 보면 일본의 3개월짜리 은행간금리는 지난해 0.2%에서 7일엔 0.01%로 낮아졌다.

미국의 경우 단기 재정증권(3개월짜리 TB)금리가 1년 전 6.09%에서 지금은 3.49%로 떨어졌다. 이것만으로는 미국금리가 월등히 높지만 물가를 반영하면 엇비슷해진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 0.3%에서 올해는 - 0.6%로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미국은 3.4%에서 2.6%(전망치)로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상승세다.

따라서 이를 반영한 실질금리는 현재 미국이 0.89%, 일본이 0.61%가 된다. 또 계절에 따라 확확 달라지는 생선식품의 물가를 제외하면 이 차이는 0.025%포인트로 더 좁아진다. 이미 미.일간의 금리격차가 거의 사라졌다는 뜻이다.

◇ 환율에는 어떤 영향 주나=미묘하다. 일반적으로 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가므로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가 낮은 나라의 통화보다 강세를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실질금리 상승은 중장기적으로 엔화가치를 상승(엔고)시킬 수도 있다.

경제불안으로 더 약세를 보일 듯하던 엔화가 최근 달러당 1백23엔대를 지키고 있는 것도 금리격차의 축소에 의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외환시장은 '심리' 가 중요하다. 미국금리가 낮아지면 미국경기가 장차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져 일본의 엔화보다는 달러화를 사려는 투자자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때 달러화 수요가 높아져 달러고.엔저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도쿄(東京)사무소 안세일(安世一)부소장은 "금리인하에 따른 미국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환율에 더 큰 영향을 줄 것" 이라고 말했다.

◇ 국제금융시장의 파급효과=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느 나라에 돈을 옮겨 놓느냐를 두고 더 고민이 커지게 된다. 일본의 예금자들 사이에서는 한때 금리가 높은 외화예금이나 외국채권 투자붐이 불었으나 환율변화 탓에 기대만큼 재미를 보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금리를 좇아가자니 경기가 불안해 보이고 장래의 경기회복을 감안하자니 당장 이자수입이 적다. 이때문에 국제적인 자금이동을 예측하기가 한층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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