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낮잠자는 서울시 주차시설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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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시내 25개 구청이 주차장 특별회계 가운데 3분의2 가량을 사용하지 않은 채 금고에 묵혀두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정부의 불법 주.정차 단속 강화 방침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한 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구청들은 1990년부터 불법 주.정차 과태료 수입으로 주차장 특별회계 조성에 나섰으며 지난해 말 누적 총액이 4천3백18억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중 1천5백27억원만 주차시설 건설과 주차단속 등 행정경비에 사용했을 뿐 나머지 2천7백91억원을 불용액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은 48%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저녁이면 주택가 곳곳에서 한바탕 주차전쟁을 치르기 일쑤고 이웃간의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지는 사례도 없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치단체들이 주차장 건설에 뒷짐을 지고 있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자치단체들은 주차장 부지를 찾기 어려운데다 정작 주차장을 지으려 하면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심해 불용액이 많아졌다고 변명한다. 그렇다고 자치단체들의 면책사유가 될 수는 없다. 각 자치단체들이 주차시설 건설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주민들을 설득했다는 말을 아직껏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광역시 이상 주요 도시의 불법 주.정차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도로교통법 시행령을 바꿔 단속 공무원을 열배 이상 늘렸다.

하지만 서울시는 주민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소방 취약지역 등에 대한 단속은 강화하되 새로 권한을 부여받은 공무원들의 실제 단속활동 개시일을 6월 말에서 10월 1일로 3개월 늦췄다.

본격적인 단속을 몇 달 유보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주차시설 건설엔 소극적인 자치단체들이 불법 주.정차 단속만 강화한 꼴이다.

이제 자치단체들은 주민들을 설득해 크고 작은 주차시설 건설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야간에 학교나 상가.업무용 빌딩 주차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할 경우 세제지원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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