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렘브란트작 3점 58년만에 귀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독일 브레멘 박물관 → 카른초브 성(城) →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의 국립미술관 → 아제르바이잔.일본 레슬러 → 미국 세관 → 런던 소더비 경매소 전시' .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이동 경로는 하르멘스 반 라인 렘브란트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세 점이 겪은 기구한 유전(流轉)의 역사다.

뉴욕 타임스는 20일자에서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사라진 뒤 58년간의 지난한 여정을 거친 이 명화들을 미 뉴욕 검찰과 세관이 압수해 원주인인 브레멘 박물관에 돌려주게 된 사연을 상세히 보도했다.

기구한 운명의 작품들은 뒤러의 '여탕' 과 '아이와 함께 앉아있는 마리아' , 렘브란트의 '손을 들고 서 있는 여자' 다. 이중 1496년에 그려진 뒤러의 '여탕' 은 종교적 색채가 지배하던 독일 미술에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이 주요 주제로 등장케 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시가 1천만달러(약 1백30억원)에 이른다. 렘브란트의 작품도 5백만달러(약 65억원) 이상이다.

잉크화인 이들 작품은 19세기 중반부터 독일 브레멘 박물관이 보관해 왔다. 1943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진 독일 정부는 세 명화를 포함해 1천5백20점의 국보급 예술품을 베를린 북부의 카른초브성으로 옮겼다. 그러나 소련군이 성을 점령했다가 떠난 이후 이 보물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이 그림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93년 바쿠에 있는 국립박물관이 이들에 대한 전시계획을 발표하면서였다. 바쿠 국립박물관은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로부터 이를 기증받아 보관해 왔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과 독일 정부가 미술품 반환 협상을 벌이던 와중인 93년 7월 문제의 세 작품은 또 다시 사라졌다.

아제르바이잔의 전 올림픽 레슬링 선수와 검찰 고위 간부를 지낸 그의 전 부인 등이 공모해 1백80점의 다른 미술품과 함께 훔쳐갔던 것이다. 이들은 세 작품을 친분이 있던 일본인 레슬링 선수 출신 사업가 고가 마사쓰구에게 넘겼다.

고가는 97년 여름 도쿄 주재 독일 대사관으로 찾아가 "가문의 유산인데 지병인 신장병 치료비 마련을 위해 팔려고 한다" 며 1천2백만달러(약 1백56억원)를 요구했다. 하지만 독일측으로부터 도난 미술품 수사 협조 요청을 받은 미 뉴욕 검찰은 세관과 공조수사, 절도범들을 줄줄이 체포했고 명화들을 58년 만에 원주인의 품에 돌려줄 수 있었다.

예술품 반환식은 20일 뉴욕 맨해튼의 미 세관 본부에서 폴 오닐 미 재무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으며, 반환된 작품들은 런던 소더비 경매소에서 일반인에게 전시된다.

조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