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파노라마] 한국 체험 1번지 역삼동 '손스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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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산타워.보신탕.명품 쇼핑, 그리고 때밀이 목욕….

외국인들이 '한국' 하면 떠올리는 것들이다. 정해진 고궁 코스를 돌고 백화점 순례를 마친 뒤 이탈리아 타월로 쌓인 여독을 밀어버리면 여행은 끝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상당수 외국인용 한국여행 가이드북의 내용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한국 관광객에게 수도 서울은 아직도 흥청망청 놀고 먹고 즐기기 위한 환락도시일 뿐이다.

이쯤되면 한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가정집의 은근한 불빛을 보며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무슨 음식을 먹고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테헤란밸리의 빌딩숲을 헤치고 골목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아담한 2층집이 나온다. 대문 앞에 1년 내내 태극기가 나부끼는 이곳은 외국인의 한국생활 체험 1번지인 '손스홈(Son' s home)' 이다.

온돌마루와 격자창문이 정겨운 '손씨네 집' 엔 지난 2년간 5천여명의 외국인이 방문해 한국의 일상문화를 체험하고 돌아갔다. 손스홈은 손연숙(孫蓮淑.48).손정숙(孫貞淑.44)자매와 어머니 장복희(張福姬.73)씨 등 세 모녀가 자신의 집을 개조해 1999년 10월 문을 열었다.

"짬짬이 해외여행을 다니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간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냐' 고 물었죠. 예상 외로 한국의 일상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

孫씨 자매는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김치담그기.풍악놀이.사군자치기 등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반나절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김치담그기. 지난주 말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키코 아케미(26.일본)는 "김치를 담글 때 배추잎을 하나씩 들추며 양념을 넣는 방법을 처음 봤다. 일본 김치는 매운맛 뿐인데 한국 김치는 오묘한 맛이 난다" 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김치담그는 방법을 전수하는 어머니 張씨는 "외국인들이 배추잎에다 양념을 얹어 입에 직접 넣어주면 너무 좋아한다" 고 말했다. 배추를 절이는 시간, 고춧가루.마늘양념 분량 등도 이참에 계량화했다.

"김치담그는 법이 극비사항이라구요? 일본 배추는 너무 물러 우리 김치와는 처음부터 경쟁이 안돼요" 라고 張씨는 자신한다.

김치담그기가 끝나면 준비해둔 한복을 입고 장구를 친다. 연숙씨는 "가락이 익숙한 동양인은 금방 따라하지만 서양인은 자리에 앉는 자세부터 어색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며 "매일 시끌벅적해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함께 참여해 즐기는 분위기" 라고 말했다.

孫씨 가족은 김치와 온돌, 한국음악과 춤 등 가장 일상적인 한국문화를 외국인에게 전파하는 '민간 외교관' 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참가비는 1인당 7만원이며 전화(02-562-6829)나 인터넷(http://www.sons-home.com)으로 하루 전까지 예약하면 된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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