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이태원 등 가격표시제 무시 '바가지' 겁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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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분명히 1백25만원에 준다고 했잖아요" "배달비를 따로 내야 한다니까요" -.

12일 서울 용산전자상가 전자랜드의 한 가전전문 매장에서 주인과 손님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요즘 한창 인기있는 문 두개짜리 냉장고(L사 6백76ℓ)에 붙어 있는 가격은 1백37만원이지만 실제 주인이 부른 가격은 1백25만원.

예비신부 朴모(28.강서구 화곡동)씨는 "스무군데를 돌아다닌 뒤 가격을 가장 싸게 부른 이곳에 다시 왔더니 배달비 별도에다 카드결제의 경우 4만원을 더 내야 한다며 말을 바꿨다" 고 불평했다.

1999년 9월부터 시행 중인 판매가격 표시제가 2년이 넘도록 판매업소와 소비자의 인식 부족으로 제자리를 찾지못하고 있다. 특히 용산전자상가와 이태원 등 국내외 관광객이 몰리는 대형 매장 대부분이 이를 무시하고 있어 내국인은 물론 관광차 들른 외국인에게까지 큰 실망을 주고 있다.

현장확인 결과 전자랜드의 경우 매장마다 제품 표시가격이 제각각인 데다 아예 가격표를 써놓지 않은 곳도 절반이 넘었다. 소형 가전제품을 취급하는 한 건물에서는 모든 매장이 담합이라도 한 듯 가격표시를 하지 않았다.

용산보다 더욱 심한 곳은 외국인에게 관광명소로 알려진 이태원.

A상점에 들러 가죽 서류가방을 산 權모(32.마포구 상수동)씨는 "외국인이 17만원에 사가는 것을 보고 흥정 끝에 12만원에 사 좋아했는데 나중에 가만히 따져보니 가격표시가 돼있지 않아 바가지 쓴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고 말했다. 상점 주인은 "가격표시제가 있는 것은 알지만 누구도 먼저 가격을 붙이려 하지 않는다" 며 "단속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굳이 필요성을 모르겠다" 고 말했다.

최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서울시내 5개 구청 관내의 소매업소 2천54곳을 대상으로 가격표시제 준수 여부를 조사한 결과 10개 업소 중 네곳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의 37.8%인 7백77곳이 판매가격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거나 일부만 표시하고 있었다. 협회 관계자는 "전자상가와 외국인 관광명소가 많은 용산구가 이행이 42.6%에 그쳐 꼴찌를 기록했다" 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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