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위기론 주가 반등 알리는 역설적 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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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하반기 경제지표는 어둡지만 서울 여의도의 펀드 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은 "주가 바닥이 가까워졌다는 신호가 피부로 느껴진다" 는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다.

이들이 꼽는 주가 바닥 징조는 다섯 가지. 애널리스트들은 "객관적인 지표가 없어 고객들에게 과감한 매수를 권유하기는 어렵다" 며 "그러나 과거 경험으로 보면 이런 다섯 가지 현상이 나타나면 주가가 바닥을 치고 상승 국면으로 돌아섰다" 고 입을 모으고 있다.

① 'R' 지표=R는 '경기후퇴(Recession)' 의 영문 알파벳 첫 글자로, 최근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주간지들은 잇따라 'R' 자를 헤드라인에 내세우고 있다. 올해 초부터 지면에 등장한 'R' 제목은 요즘 출현빈도가 부쩍 잦아졌다.

증권업계는 이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주가의 바닥이 가까웠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주가는 경기를 3~6개월 앞서 선반영하기 때문에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질수록 주가의 바닥도 머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②외환 위기설=주가가 바닥권을 지날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1998년과 99년 러시아의 지불유예(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외환위기설이 파다하게 퍼졌을 때 주가는 바닥권이었다.

지난해 말 대만의 금융 불안설이 나돌았지만 주가는 곧바로 큰 폭으로 반등했다.

이같은 이유로 최근 아르헨티나의 국가 부도설이 고개를 드는 것도 역설적으로 주가가 회복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③장기불황설=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국내에는 L자형 장기 불황설이 퍼졌다. 그러나 이듬해 경제 성장률과 주가는 크게 상승했다.

세계적인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지난 98년 파산했을 때도 갖가지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결과적으로 주가는 다시 뛰어 올랐다.

④엔화 약세=지난 2월 엔화가 약세를 보이자 달러당 엔화 환율이 1백50엔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측이 무성했다.

엔화 약세로 수출 경쟁력 약화 등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리란 우려로 투자자들은 몸을 사렸지만 종합지수는 저점을 찍고 반등했다.

최근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바닥을 알리는 신호라는 분석이다.

⑤애널리스트 반성=종합지수가 바닥권에 진입할 때마다 애널리스트가 장을 잘못 예측했다는 사과와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애널리스트의 참회록이 봇물을 이루는 요즘 펀드매니저들은 "극단적인 위기론이 쏟아질 때야말로 곧 주식을 살 때" 라고 해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골드만삭스 펀드 매니저들은 직원들의 야근 교통비가 가까운 전철역까지 갈 수 있는 택시요금으로 줄어 들면 경기가 바닥권에 들어선 신호로 삼는다.

또 뉴욕 맨해튼의 생수 판매량이 줄어들면 불황이 가까웠다는 증거로 여기는 것처럼 서울 증시에도 이같은 역설적 지표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굿모닝증권 홍춘욱 수석연구원은 "당장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어도 한꺼번에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주가가 바닥권을 통과하고 있다는 징조" 라며 "미국.유럽의 경기선행지수가 좋아지고 유럽 중앙은행도 금리인하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돼 주가가 머지않아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고 지적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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